[문화재의 뒤안길]조선왕조실록의 '책 수'는 수난사의 상징

임진왜란에 원본·교정본 등 五大史庫에 봉인

지난 6월 국보 제151-4호로 추가 지정된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중 광해군일기.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6월 조선왕조실록의 문화재 ‘추가’ 지정이 이루어졌다.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등 96책이 국보로 추가 지정됐다.


전주사고본과 정족산본 1,181책과 태백산본 848책은 실록의 수난과정을 상징한다. 실록은 만들어진 후 춘추관을 비롯한 충주·성주·전주의 4대 사고(史庫)에 봉안됐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주를 제외한 사고가 모두 불타버렸다. 이후 1603년부터 다시 간행해 전주사고에 있던 원본은 강화 마니산에, 교정본은 오대산에, 다시 간행된 3부의 새 책은 춘추관 및 태백산, 묘향산 즉 오대사고(五大史庫)에 나눠 봉안했다. 이 중 마니산본은 후에 정족산으로, 묘향산본은 무주 적상산으로 옮겼다. 이러면서 원본 실록과 같은 1권 1책이 아닌 더러는 2~3권을 1책으로 장책하는 숫자 차이가 생겼다.

최근 확인된 조선왕조실록 96책은 임진왜란 이후의 수난을 상징한다. 일제 침탈 이후 정족산사고본과 태백산사고본은 조선총독부로, 적상산사고본은 구황실 장서각에 이관됐고 오대산사고본은 일본으로 강제 반출됐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다.

다행인 것은 새롭게 확인된 조선왕조실록이 훼손으로 상실됐던 실록의 완전성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실록을 설명하는 많은 수치는 우리 역사상 계속됐던 수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록의 정체성을 다시 찾는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다.
/정제규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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