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 혐의로 기소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상고심 결과가 29일 나왔다. 경영권 승계작업 현안인식과 부정청탁이 미필적으로 인식됐고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된 승마용 마필이 최순실씨 소유로 판단됨에 따라 당초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던 이 부회장의 운명은 안갯속이다. 박 전 대통령도 공직선거법과 뇌물 혐의를 분리 선고하지 않은 절차적 문제로 사건이 파기환송돼 형량이 늘어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최씨 사건도 일부가 무죄로 바뀌면서 파기환송됐다.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선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말 최순실소유X·부정청탁X” 반대의견 주목
▲말 3마리가 뇌물인가?
대법관 다수의 의견에 따라 국정농단 상고심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낸 조희대·안철상·이동원 3명 대법관의 소수의견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들은 “승마지원용 마필이 최순실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기 어렵고, 영재센터 지원금이 승계작업 현안에 관한 대가라는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달라도 소신 있게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소수의견 대법관들은 당시 법정에서 ‘말 3마리가 뇌물인지 여부’에 대해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고인 최서원(최순실)이 삼성 관계자로부터 마필 위탁관리계약서를 작성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화를 낸 것은, 마필 소유권이나 실질적 처분권한의 이전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 측이 최씨에게 말의 소유권을 명시적으로 확인하려고 한 행동에 화를 낸 것이란 의미다.
또 설령 실질적 소유권 이전을 요구한 행위라 하더라도 삼성 측이 최씨의 면담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요구사항을 알려주면 지원해 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지 마필의 실질적 처분권 이전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결국 이러한 막연한 사정들만으로 마필의 소유권 또는 실질적 처분권을 삼성이 최씨에게 이전하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이들은 판단했다.
아울러 삼성의 정유라 승마지원이 보도되자 최씨와 삼성 측은 말들의 소유권을 2018년 이후에 이전하기로 추진한다고 협의했는데, 이 내용은 그때까지는 말들의 소유권이나 실질적인 처분권한이 최씨에게 이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영재센터지원과 관련해 부정청탁이 인정되는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청탁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그 존재 여부가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특별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 보더라도 공소사실에 특정된 내용의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을 인정하기 어렵다’ (대법원 소수의견)
소수의견 대법관들은 “특별검사가 주장하는 현안들 중 일부는 그것이 성공할 경우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접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사후적·결과적으로 그러한 효과가 일부 확인된다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의 합리화 등과 같은 여러 효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러한 사정만으로 승계작업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또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의 대가라는 점에 대해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이 사건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재용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서 승계작업에 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집행의 내용과 영재센터 지원금이 그 직무집행의 대가라는 점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29일 서울 용산구의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씨, 일부‘강요죄’ 부분 무죄 주목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협박이 있어야 한다. 최씨가 강요한 혐의로는 △전경련과 대기업들에 미르·K재단 출연금 요구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납품계약 체결과 광고발주 요구 △KT에 대한 채용 보직변경과 광고대행사 선정 요구 △롯데그룹에 대한 K재단 관련 추가지원 요구 △삼성그룹에 대한 영재센터 지원 요구 △그랜드코리아레저 등에 대한 스포츠단 창단·용역계약 체결 및 영재센터 지원 요구 △포스코그룹에 대한 스포츠단 창단과 용역계약 체결 요구 등이다.
검사는 이 요구 건들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면서 강요죄로도 공소를 제기했다. 앞서 1·2심은 이 요구가 강요죄의 협박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를 무죄라고 봤다. 요구를 강요죄의 요건인 협박, 즉 해악의 고지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하급심에서 강요죄의 협박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는 뜻이다.
세 피고인의 국정농단 혐의 사건은 이제 다시 모두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됐다. 추석 연휴 이후 고등법원 부패전담부로 재판부가 배당될 예정이다. 검찰·법원 등은 국정농단 사건이 올해 안에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던 사상 초유의 국정운영 비리 사건이 2016년부터 시작돼 어느새 4년째로 이제 끝을 향해가고 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