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가 사랑한 '백자'...가을경매 나온다

■서울옥션 4일 127점 경매
김환기 '산' '백자와 꽃' 선보여
천경자 등 女화가 5인방 작품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초대된
'헤이리 딸기 테마파크'도 출품

김환기 ‘백자와 꽃’이 추정가 8억~12억원에 경매에 오른다. /사진제공=서울옥션

서울옥션이 오는 4일 서울옥션강남센터에서 제153회 미술품 경매를 열고 총 127점, 120억원 규모의 작품을 출품한다. 1,000만달러 시대를 내다보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필두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5인방까지 ‘미술품 진수성찬’이 마련된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건축가 조민석 등이 설계하고 비엔날레급 작가들의 작품까지 소장할 수 있는 ‘헤이리 딸기테마파크’는 건물을 넘어 예술적 가치로 승부하기에 이번 경매 출품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환기의 ‘산’이 추정가 14억~20억원에 경매에 오른다. /사진제공=서울옥션

◇김환기가 사랑한 것들=국내 미술품 경매가 톱10 작품은 지난해 5월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 팔린 ‘3-Ⅱ-72 #220’를 필두로 지난 2015년 10월 약 47억2,100만원에 팔린 ‘19-Ⅶ-71 #209’까지 1~6위를 모조리 김환기가 휩쓸고 있다. 그가 뉴욕으로 가 완성한 전면 점화(點畵)인데 화가는 이 숱한 점을 찍으며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 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 (중략)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고 되뇌었다. 완전 추상의 경지에 오른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는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그득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김환기는 1950년대 후반 파리 체류 시절 연 첫 개인전과 마지막 개인전의 포스터를 ‘산’으로 택했다. 김환기의 그 시기 작품인 1955~56작 ‘산’이 추정가 14억~20억원에 경매에 오른다. 김환기의 산은 육중함보다는 유려함으로, 굽이치는 선으로 생명력을 내뿜는다. 그 안에 가미된 원색과 구름이 자연을 관조하는 작가의 심성을 투영했다. 이 그림은 화가가 작고한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회고전에도 출품된 대표작으로, 김환기에 관한 평론 글에는 거의 항상 등장하며 지난 2013년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환기미술관 전시에도 선보였다.


추정가 8억~12억원인 1949년작 ‘백자와 꽃’에는 김환기 특유의 백자 사랑이 담겼다. 어둠 내려앉은 밤 풍경으로, 둥근 백자 항아리가 보름달처럼 산 중턱에 걸린 형상이다. “이조 항아리/ 지평선 위에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 있다./ 굽이 좁다 못해 둥실떠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 똑 닭이 알을 낳듯이 사람의 손에서 쏙 빠진 항아리다.” 김환기가 일찍이 1942년에 쓴 시심(詩心)이 그대로 담겼다. 화가의 1950년대 작품의 전형이며 세련된 색감, 몇 개의 직선으로 드러낸 산세, 패턴처럼 간략하게 묘사된 꽃 등의 표현이 수작의 이유로 꼽힌다. 이 그림 역시 김환기의 주요 평론글에 거듭 등장했고 김환기 30주기 기념전 등 환기미술관 기획전에도 수차례 선보였다.

이성자 ‘무제’. 추정가 4,000만~6,000만원. /사진제공=서울옥션

◇한국 여성화가 5인방=이번 경매에는 일찍이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독자적 추상화풍을 개척한 이성자를 필두로 천경자·방혜자·최욱경·이숙자 등 여성화가들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1951년에 프랑스로 간 이성자의 초기작인 1957년작 ‘무제’가 추정가 4,000만~6,000만원에 출품됐다. 이 시기 작품은 단순한 형태, 두터운 질감, 순수하고 밝은 색채로 형상 없이 드러내는 서정성이 특징이다.

천경자 ‘꽃과 여인’. 추정가 3억~4억원. /사진제공=서울옥션

방혜자 ‘빛의 춤’. 추정가 3,500만~5,000만원. /사진제공=서울옥션

천경자의 ‘꽃과 여인’은 추정가 3억~4억원의 작품으로 작가가 1960년대에 몰입한 초현실적 분위기가 짙은 여성 인물화다. 한 다발 꽃을 안고 옆모습을 보인 여인에게로 커다란 나비가 날아들고 있다. 마치 마르크 샤갈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색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며 천경자 수필집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에도 등장한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방혜자의 ‘빛의 춤’(이하 추정가 3,500만~5,000만원)은 밖에서 비춘 빛이 아니라 내면에서 새어나온 빛이다. 추상화가 최욱경이 푸른색과 황색의 조합,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를 이뤄낸 ‘무제’(1,800만~3,000만원), 보리밭을 소재로 자신만의 아이콘을 만든 이숙자의 ‘리시안샤스 이브’(2,500만~4,000만원)도 새 주인을 찾는다.

최욱경 ‘무제’. 추정가 1,800만~3,000만원

이숙자 ‘리시안샤스 이브’. 추정가 2,500만~4,000만원. /사진제공=서울옥션

파주시 법흥면 헤이리 소재 ‘딸기 테마파크’가 추정가 40억~60억원에 경매에 오른다. /사진제공=서울옥션

◇예술품이 된 건축물=경기 파주에 위치한 ‘예술마을 헤이리 딸기 테마파크’가 추정가 40억~60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미술품 경매사에 건축물이 출품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건물 자체가 지난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초대받았고 건축가가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수상자 조민석 등이라는 점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딸기 테마파크’는 지난 2004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소재의 대지면적 3,580㎡에 준공된 2층짜리 문화공간 ‘딸기가 좋아’와 3층짜리 ‘미술창고’를 아우른다. 건축면적 1,303㎡에 연 면적 2,480㎡로 조민석의 매스스터디스와 최문규의 가아건축사무소, 제임스 슬레이트가 공동으로 설계했다. 건물이 조성될 당시 함께 설치된 임옥상·최정화·이완 등의 설치 조형물도 매물에 포함됐다.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는 천호균 씨가 이끈 패션잡화브랜드 쌈지가 헤이리 예술마을 초입에 개관한 곳으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에게 호응을 얻으며 파주 헤이리의 명소가 됐다. 서울옥션 측 관계자는 “건축물이 갖는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를 평가해 경매에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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