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관계부처와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국회 산자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로 피해를 당할 수 있는 품목 명단을 회람했다. 산업부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품목이 9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일본 수입에 100% 의존해 당장 대체수입처 찾기가 사실상 어려운 까닭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하면 국내 기업들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품목들이다. 이 중에는 일본 DNP와 쇼와덴코 등이 70% 이상 세계 시장을 점유해 업계를 중심으로 수급 우려가 큰 2차전지 파우치가 포함됐다. 아울러 일본에 90% 이상 의존하는 부품·소재는 22개로 분석됐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차 생산에 필요한 소재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 대부분이 한국의 차세대 산업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라며 “일본과의 대치국면이 길어질수록 성장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 의존도와 국내 산업 피해 규모, 대체 가능성 등을 고려해 100대 취약품목을 선정한 바 있다. 시장 혼란을 우려해 구체적인 품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품목을 5년 내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국산화가 쉽지 않은 만큼 일본 외 국가에서 조달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체공급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높은 기술 수준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찾는다 해도 최종 수요처에서 품질 문제를 제기해 납품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세한 결함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산업 특성상 수요처에서 제조과정에 어떤 소재가 사용됐는지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며 “그동안 써온 일본 업체의 소재 대신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쓴다고 하면 수요처에서 껄끄러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업의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오는 10월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거부한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이 현금화하면 일본이 수출규제를 보다 강도 높게 운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자산이 경매를 거쳐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면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통상전문가는 “일본 전범기업의 압류자산이 현금화하는 10월쯤이면 일본이 2차전지나 미래차를 겨냥한 추가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며 “소재 안정화 노력도 좋지만 외교적 접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