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 없다" 韓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가닥

트럼프 요구 시한 한달 앞둬
"中 대신 美와 맞서기 피하자"
'반대' 농식품부도 태도변화

홍남기(오른쪽 세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성윤모(〃네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경기를 진작할 정책들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개도국 지위를 계속 고집하다 얻는 실익은 거의 없는 반면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개도국 특혜’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중국을 대신해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 될 수 있어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통상협력을 강화해 미 측과의 유대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포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3면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4일 “앞으로 한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주장할 무역협상이 사실상 없고, WTO 회원국의 일원으로 확보한 권리는 개도국 지위와 상관없이 계속 갖게 된다”며 “개도국 지위 포기로 방향을 잡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도국을 유지했을 때 실익이 없는데 미국과 맞서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개도국 지위 포기 관련) 부처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 분야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기로 하고 선진국에 비해 관세를 덜 부과받는 대신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등 특혜를 누려왔다.


앞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미 무역대표부(USTR)에 향후 90일 내 WTO 개도국 기준을 바꿔 개도국 지위를 넘어선 국가들이 특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의 데드라인이 다음달 23일이어서 우리 정부도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을 잡고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의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들이 WTO 개도국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은 이들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다만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농수산업계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돼 농림축산식품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농식품부를 염두에 두고 “최근 다른 부처의 의견도 과거의 반대 일색에서 다소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최종 결정이 남은 가운데 농식품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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