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건축사로서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 도시들의 풍경에 할 말이 많아진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많은 사람이 멋진 건축을 볼 때 “외국 같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이는 생경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도시 풍경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기에 건축을 창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다지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멋진 도시 풍경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환경은 지역·도시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깊게 하고 자부심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게 한다. 건축은 그 가운데 가장 큰 요소다. 특히 개인의 건축보다는 공공이 이용하는 공공건축인 경우가 더욱더 그렇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공공건축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건축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게 아니다.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세이나찰로 시청사는 거의 10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튼튼하게 지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높은 건축적 완성도다. 완성도가 높고 건축적 가치가 충분한 공공건축은 세월이 지나고 사용자의 요구가 늘어나도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그런 것이 문화재다.
우리나라 공공건축은 어떠한가. 공공건축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점은 건축사나 담당발주 공무원 모두 공감하는 사항이다. 외국도 마찬가지로 설계 경기를 통해 당선된 대부분의 공공건축은 실제 공사에 들어가면 건축적 완성도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예산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에 대한 행정처리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감사체제가 강력한 탓에 예산을 올리느니, 예산에 맞춰 디자인을 변경해버리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하다 보니, 우리 공공건축이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지기 힘든 게 현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담당발주 공무원에게 어느 정도 권한이 부여된다. 대부분이 건축 전문가인 건축사를 통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들의 판단을 인정해 준다. 또한, 이를 감사하는 시스템 역시 특화된 전문가들로 구성돼 합리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감사가 이뤄지게 된다.
좋은 공공건축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축사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돼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성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행정기관의 건축 감사나 재정 시스템에 건축 전문가인 건축사가 초대받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좋은 공공건축은 한 나라의 얼굴이며 후세에 길이 남겨질 문화재라는 시각에서 건축 전문가 중심의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공건축특별법의 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