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2년 연속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며 이런 준비가 안 된 정책 때문에 성장과 분배 모두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호재기자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면서 한국 경제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대 성장이 기정사실화할 정도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소득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지는 등 분배도 나빠지고 있다. 성장과 분배 모두 낙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부진의 여파로 내년에는 국세수입도 10년 만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며 재정을 계속 쏟아부을 태세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는데도 실패로 드러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의 갈등까지 격화돼 경제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는 상황이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난국을 헤쳐나갈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경제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데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고 있다.
△현 정부가 준비 없이 출발한 게 문제다.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지난 2017년 12월 증세안 통과 등으로 세금을 많이 걷어 지출했는데도 지난해 2.7% 성장에 그쳤다. 올해 1·4분기에는 -0.4%로 추락했다. 반면 미국은 감세를 통해 지난해 2.9%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가 유독 낮은 성장률을 나타낸 것은 수출과 투자부진의 영향이 크다. 특히 투자부진이 심각하다. 1·4분기 설비투자는 1년 전보다 16%나 감소했다. 2·4분기에는 낙폭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뒷걸음질쳤다. 준비 안 된 정책이 기업 투자 엔진까지 식게 했다. 지금은 투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시장의 평균기대(마켓컨센서스)인데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면 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다.
-정책전환의 목소리가 높은데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고 있는데….
△정부는 악덕 기업주가 그동안 줄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낮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가계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면 경제가 잘 돌아갈 것처럼 생각하는데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은 별 효과가 없다. 지난 2년 새 최저임금이 29%나 올랐는데 이 정도면 긴급경제명령이나 마찬가지다. 첫해에 16.4% 올린 것은 그렇다고 쳐도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은 자살행위라 할 수 있다. 결정하기 전에 노동생산성과 지불능력을 고려했어야 했다.
-그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지금 상황을 보면 소득분배가 개선될 것이라던 정부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임금이 올라가는 것만큼 해고확률도 높아지는 것을 간과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가볍게 여겼다. 그 결과 비숙련노동자들만 가장 피해를 입는 등 소득분배는 되레 나빠졌다. 올 2·4분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격차가 2·4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로 벌어진 게 이를 말해주고 있다. 분배도 성장도 모두 놓친 꼴이다. 최저임금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준비 안 된 정책의 혜택은 외국인 근로자와 정규직만 봤다. 이런데도 정부는 정책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보완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2·4분기 소득격차가 역대 최악인데도 “소득개선에 대한 정부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이렇게 독선적이어서 실패 보정능력이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는 것이 순리다.
-경제가 빨리 가라앉으니 정부는 재정투입으로 물꼬를 트려고 한다.
△올 상반기 재정집행률이 6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경제상황이 긴박해져 재정집행을 가속화했다는 얘기다. 내년에도 공격적인 재정투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세수호황에 따른 재정여력은 미래를 위해 비축했어야 했다. 경제활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세금을 퍼부어가며 지출, 특히 복지 분야를 늘리는 것은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세수호황에 기댄 재정투입은 민간, 특히 기업의 활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운용에서 정부가 동분서주할수록 경제는 활기를 잃는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거미줄 같은 규제에 높은 법인세, 반기업 정서 등에 짓눌려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 재정만으로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특히 기업상속에 가혹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의 두 배다. 여기에 최대주주 지분이 50%를 넘으면 실제 최고세율은 65%에 이른다. 이에 비해 대다수 국가들은 세율을 낮게, 예를 들어 10%로 유지하거나 그 이상을 적용하더라도 소득세율보다 낮다. 최고소득세율보다 더 높은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데 우리는 반대다. 기업상속은 마라톤으로 비유하면 바통 터치라 할 수 있다. 경영권 승계는 그 기업이 최소한 계속기업으로 성공해왔음을 의미한다. 이를 못하게 하면 어떤 기업도 존속할 수 없다. 상속세는 기업이 청산할 때 정산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상속세를 폐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상속세 중과는 형평성은 개선하지도 못하고 경제효율만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약탈적 상속세율을 부과해 성공한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가로막는 것은 성공을 처벌하고 부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속세 강화로 얻어지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형평성을 높인다고 세금을 많이 걷으려 하다가는 세금 낼 사람과 기업을 모두 잃게 된다. 상속세를 폐지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부동산·주식 등을 상속받더라도 이를 현금화하지 않고 생산과정에 다시 투입하는 경우 상속세 부과를 이연할 필요가 있다. 상속과세의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도 상속세 완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일갈등이 상호 보복전으로 치닫는 등 격화되고 있다.
△외교분쟁을 국내 여론으로 풀 수는 없다. 한일 간 충돌 논리와 지점은 명확하다. 거북선 타고 죽창 들고 싸울 것이 아니라면 유력한 제3국의 지지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촛불집회와 불매운동으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사태가 유리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반일 감정을 정치자산화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지자체의 불매운동 선동 등은 관제 민족주의 시비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일본과의 끝장토론에서 이길 수 있는 논리와 명분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반일 감정의 정치자산화로 문제를 일으켜놓고 기업더러 나가 싸우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반일로 국력을 키울 수는 없다.
-극일 방안으로 소재·부품 국산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소재·부품 개발은 꾸준한 시간 축적이 필요한 아날로그 성격이 강하다. 단기간에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겠지만 이제라도 국산화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산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성공하더라도 수입대체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른 시일 내에 국산화하거나 대체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이 소재와 부품·조립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소재는 특성상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나 복제가 쉽지도 않다. 이 때문에 지금은 국제분업을 통해 윈윈 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제한도 논란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일본 전범기업 투자가 책임투자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식의 대응은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문제를 투자제한의 논거로 삼는 것은 과거를 현재로 소급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감정을 이유로 투자를 배제하는 것은 현명한 정책선택이 아니다. 상대방의 보복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재 우리가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한 액수는 1조3,000억원인 반면 일본이 우리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7조원에 달한다. 이런 감정적인 대응이 계속돼 한일관계가 더 나빠질 경우 일본의 금융압박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일본의 보복은 ‘우대 지위에서 배제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차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형식상 합법적이지만 불공정 결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에 해당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더라도 ‘비위반 제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소재·부품을 5,000억원 상당 수입해 우리는 170조원어치의 물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렛대 효과가 1대340에 이른다. 힘들겠지만 물밑대화를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게 최선이다. 우리도 국력이 신장된 만큼 통 크게 우리 정부가 보상하고 일본 정부는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타협을 모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로 갈등 해소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한데.
△외국에서 작동했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자기 이익만 취하는 노동계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선진제도라며 억지로 도입한다고 한들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그게 가능하려면 우선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중립적인 상태로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 기구라고 만들어놓고 정작 정부는 물밑에서 노동계의 의견만 듣고 있으면 되겠는가.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석사,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다가 2018년 8월 정년퇴임해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12월부터 2년여간 자유주의 사상과 시장경제에 관한 연구활동을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으로 일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2009년부터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