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한국GM 노동조합이 지난 2002년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후 처음으로 전면파업에 나섰다. 1997년 대우자동차 시절에 전면파업을 벌인 후 22년 만이다.
노조는 기본급 5.65% 정액 인상(호봉승급분 별도)과 통상임금의 250% 규모 성과급 지급(약 1,000만원), 사기진작 격려금 650만원 등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원을 넘는다며 동결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9일 전체 조합원 1만여명이 참여하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이 계속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해외로 물량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미국GM 본사의 생산물량 감축 경고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전면파업을 강행했다.
이번 파업으로 한국GM 차량을 보유한 고객은 추석연휴를 앞두고도 직영점에서 차량점검을 받을 수 없다.
노조의 요구에 대해 사측은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당시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은 수익성 회복을 전제로 하기로 합의했다”며 “지난해만 8,594억원의 손실을 내 회사 측이 줄 수 있는 것은 ‘제로’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GM은 2017년 1조6,266억원, 지난해 8,594억원 등 최근 5년 동안 4조4,447억원의 누적 순손실을 냈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전면파업과 앞서 진행한 부분파업을 합쳐 약 1만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노조의 성과급·격려금 요구를 수용하는 데만 1,000억원대의 비용이 들 것으로 알려졌다. /부평=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3일 파업에 1만대 생산 차질… 구조조정에 기름 붓나
■한국GM 첫 전면파업...부평공장 가보니
“파업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공장 경쟁력 갖춰야” 목소리도
“근로단축에 파업 겹쳐 죽을 맛”
주변 식당가 매출 반토막 수두룩
한국GM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멈춰선 부평공장 내 조립공장에 한 노조원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파업이라도 해야 하는 답답한 심정이지만 파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습니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회사 정상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한국GM 직원)
한국GM이 22년 만의 전면파업에 돌입한 9일 오전7시께 한국GM 부평공장 서문 앞. 노조 집행부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나머지 출입구를 봉쇄한 채 서문에서 출입차량과 조합원 신원을 확인하고 출입 이유를 확인했다. 출근길 잰걸음을 옮기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사뭇 무거워 보였다. 파업을 독려하는 노조 대의원들의 확성기 소리만 공장 앞에서 울렸다. “출근길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들(사측)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함께 싸워주십시오.”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22년 만의 전면 파업에 대해 물었더니 “파업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답과 “파업은 답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기도 했지만 파업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공통의 상황인식이기도 했다. 한 직원은 “한국GM은 수출물량이 매출의 80~90%를 차지하는 구조인데 수출 물량이 줄어든 것은 직원들의 탓이 아니라 본사의 정책 탓이지 않느냐”며 “순이익이 줄고 적자가 나면서 상여금이 나오지 않으니 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강력하게 파업하자는 의견보다는 파업이라도 해서 주장을 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직원은 “파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직원은 “해외 공장들이 폐쇄되고 군산공장까지 문을 닫은 상황인데 회사가 살아야 일자리도 살지 않겠느냐”며 “파업보다는 공장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고 했다. 줄리언 블리셋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달 한국에 와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물량을 다른 국가에 넘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GM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또 다른 직원도 “회사가 좋을 때야 의례적으로 파업하면 사측이 인상률을 올려줬지만 지금은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상황”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파업은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한숨을 지었다. 실제 기본급 5.65% 인상(자연승급분 별도), 통상임금의 250% 규모 성과급, 격려금 650만원 등 노조의 최초 요구에 대해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2017년까지 거의 매년 받아오던 약 1,000만원 규모의 성과급을 지난해 받지 못한 만큼 사측의 ‘성의’가 있어야 한다는 게 노조 생각이지만 사측은 “줄 수 있는 게 ‘제로’”라는 강경한 태도다. 2014년 3,332억원, 2015년 9,930억원, 2016년 6,325억원, 2017년 1조6,266억원, 지난해 8,594억원 등 5년간 누적 순손실이 4조4,447억원에 달한다는 이유에서다.
부평2공장 배정 물량 등 중장기적 계획을 명확히 밝히라는 노조 요구에도 사측은 “먼 미래의 일을 확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 부평1공장에 신차 트레일블레이저를 배정하기로 하고 현재 1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랙스를 2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며 “그 이후의 물량까지 확답하라는 노조의 요구는 들어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GM은 창원공장에는 오는 2023년부터 새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을 배정하기로 한 상황이다.
한국GM 노조를 보는 업계 시각도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현재 한국GM 등 외국계 완성차 업체는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는 모빌리티 혁명, 친환경차로의 변화 등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이어서 파업 같은 강경투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파업과 앞서 벌인 부분 파업, 잔업·특근 거부 등에 따라 총 1만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한국GM 부평공장 주변 상인들은 파업과 이에 따른 자동차 산업 부진을 우려했다. 서문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자동차가 팔리지 않아 잔업·특근도 줄었다고 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도 시행되면서 20% 정도 매출이 줄었다”며 “그나마 우리 가게는 목이 좋아 이 정도지 조금 올라가면 30% 이상, 반토막 난 가게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또 다른 식당 직원은 “주·야간 관계없이 공장이 돌아갈 때는 24시간 영업을 해도 수익이 났는데 이제는 밤에 손님이 없다”며 “최근 24시간 영업을 접었다”고 한숨을 지었다. 공사 중인 다른 가게 사장은 “어차피 손님이 없는 파업 시기에 맞춰 내부 공사를 하고 있다”며 “하루 손님이 아쉬운데 파업을 3일이나 한다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부평=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