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북한이 9월 하순이라는 비핵화 실무협상 시간표를 제시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만남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유세장으로 떠나기 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밝힌 ‘9월 하순 협상 용의’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과 관련해 방금 나온 성명을 봤다”면서 “그것은 흥미로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최 부상은 한국시간으로 전날 밤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미국의 거듭된 대화 복귀 요구에 응답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볼 것”이라며 “우리는 억류자들을 돌려받았다. 위대한 영웅(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유해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실망했느냐는 추가 질문에 “나는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볼 것이지만 나는 늘 ‘만남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만남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과시했다.
북한의 9월 하순 실무협상 재개 제안에 대해 북미 대화의 최고 지도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멈춰있던 비핵화 시계가 다시 돌아갈지 주목된다.
전날까지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던 양측이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는 것은 연내라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내년 11월 재선이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해를 넘길 경우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비난 여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연내 시한까지 비핵화 협상에 진척이 없을 경우 내년 초 미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는 5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북·중 국경 인근에 전(全) 주일 미군 기지를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신형 고체연료 북극성2형(최대 사거리 2,000여㎞)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실무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스티븐 비건(좌)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명길 전 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
김 위원장 역시 연내 시한까지 비핵화 협상과 관련 제재완화 및 체제보장이라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김 위원장은 통치자금인 외화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비핵화 협상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ICBM을 발사할 경우 김 위원장이 지게될 정치적 부담도 만만찮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배후에서 비핵화 협상에 개입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한일 핵무장론 카드를 꺼내 든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일 두 나라의 핵무장은 동북아의 패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안보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남북미 판문점 정상 회동을 통해 북미가 대화채널을 통해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른 시일 내에 실무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이 9월 하순 실무협상 재개 조건으로 미국의 새 계산법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여전하다. 최 부상은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북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해제라는 미국의 비핵화 방식의 수정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2635A05 북한단거리미사일재원야근
북한이 미국에 실무협상 시간표를 제시한 직후 동해상으로 미상의 발사체를 2회 발사한 것도 미국의 태도변화를 압박하려는 전략적 행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시간으로 10일 오전 평안남도 내륙에서 동쪽 방향으로 미상 발사체를 2회 발사했다. 합참은 “우리 군은 추가발사에 대비하여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 조치에 따른 일부 제재완화는 사실상 협상의 실패라는 인식이 강한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