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 증가 위기’ 朴, 믿을 건 ‘강요죄 무죄’=지난달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한 2심의 유죄 판단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뇌물 혐의는 분리해 선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4일과 6일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사건을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해당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박 전 대통령 1심 판단을 파기하고 형량을 재산정, 선고문을 2개로 나눠 작성해야 한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박 전 대통령의 유죄가 사실상 거의 다 인정된 상황에서 혐의만 분리해 선고될 경우 형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혐의를 분리해 판단하는 것이 경합해 판단하는 것보다 피고인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이 최씨 사건을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대기업들에 각종 재단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를 원심과 달리 무죄로 본 것은 변수라고 평가했다. 전원합의체 선고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은 “특정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요구를 한 것은 그 언동의 내용과 경위, 요구 당시의 상황 등에 비춰 강요죄의 성립 요건인 협박으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애초에 하급심에서 분리 선고를 하지 않은 점이 문제시됐기 때문에 다시 치러지는 2심은 재판장이 형량을 완전히 다시 산정할 것”이라며 “재판장이 형량이 가장 높은 뇌물 혐의에 가중치를 두고 판단하면 형량이 늘어날 수 있지만 강요죄 무죄에 무게를 두면 형량이 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서울경제DB
◇‘실형 기로’ JY, ‘작량감경’에 사활 걸 듯=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세 마리(34억원)의 실질 소유주를 최씨로 보고 이 부회장 사건도 2심 재판부로 파기환송했다. 여기에 삼성이 영재센터에 제공한 후원금(16억원)까지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는 제3자 뇌물로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의 총 뇌물 액수는 원심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무려 50억원이 증가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달 4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 중인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에 배당했다.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첫 번째 2심에서 삼성의 승마지원 용역대금(36억원)만 유죄 판단을 받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2월 석방됐다. 하지만 두 번째 2심부터는 뇌물 액수가 50억원을 넘게 돼 최종심에서 형량 증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게 돼 있다.
법조인 대다수는 두 번째 2심을 맞는 부회장 측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사실상 이제 작량감경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작량감경은 범죄에 정상을 참작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 법관이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 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엔 (법관이) 작량해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형법 55조는 유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형기의 절반을 깎도록 한다. 이 부회장은 이론상 법정형 하한인 징역 5년의 절반, 즉, 징역 2년6개월까지 최대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형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은 집행유예 대상이 되는 만큼 이 부회장 입장에선 징역 2년6개월~3년까지 감형받은 뒤 집행유예 선고를 노리는 게 파기환송 후 재판에서 최선의 전략이 된다. 실제로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불리한 판단을 내렸음에도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 부분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재산국외도피죄 무죄와 함께 법조계가 예상하는 이 부회장의 주요 작량감경 사유는 일본 통상보복 국면과 흔들리는 나라 경제 상황이다.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의 위기 시점에 국내 최대 기업 총수가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그 동안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글로벌 성장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이었던 점도 변호인단이 근거로 들 수 있는 요소로 꼽혔다.
서울 서초동의 한 판사는 “뇌물 액수가 대법원에서 확실히 확정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집행유예가 다시 나오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재판장 재량에 따라 또다시 재벌에 대한 3·5 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국정농단 재판 내년 초까지 마무리 가능성=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번째 2심 첫 재판이 대체로 10월 말~11월 초께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통상적으로 파기환송 후엔 사건에 큰 쟁점이 없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재판 절차가 빠르면 연내에도 끝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 경우 재상고심은 내년 2월 안에도 마무리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법조계는 나아가 두 번째 2심에서 정해진 형량이 재상고심에서 파기될 확률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정한 취지대로만 2심 재판부가 판결했다면 법률적 문제가 없는 한 재상고심에서 형량을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2심 재판부의 재량을 최대한 존중하는 차원에서다. 만약 재판이 차질 없이 진행돼 내년 2월 안으로 형이 확정될 경우 청와대 입장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 3·1절 특별사면 카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