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독일 낙농국가화 '모건도 플랜'

1944년 미·영, 獨 응징계획 확정

헨리 모건도 미 재무장관. /위키피디아

‘국토 분할과 완전 비무장, 군수산업 시설의 완전한 해체와 광산 파괴, 기술자 이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대상으로 시행될 뻔했던 계획이다. 목표는 철저한 비군사화(demilitarization).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전범 국가를 응징하고 잠재적 전쟁 수행능력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입안자인 헨리 모건도(사진) 미 재무장관의 이름을 따 ‘모건도 계획(Morgenthau Plan)’으로 불리는 독일 처리방안은 계획이나 도상연습에 그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실행됐을 뿐이지만 전후 국제질서에 유·무형의 영향을 끼쳤다.


계획이 확정된 시기는 1944년 9월16일. 미국과 영국은 캐나다에서 닷새간 계속된 2차 퀘벡회담을 마무리하며 모건도 플랜에 합의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못마땅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무기 원조 지속 여부와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모건도 플랜은 독일에는 가혹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전쟁을 위한 가마솥과도 같은 루르 지역’의 산업 시설을 3단계에 걸쳐 완전 파괴한 뒤 국제연합에서 관리하고 북독일과 남독일로 영구 분단하며 설비를 연합국이 뜯어갈 뿐 아니라 고급 기술인력을 분산 이주시키며 독일 국민들을 강제 노동시킨다.

루스벨트는 자칫 독일인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꿈적하지 않고 이 계획을 밀고 나갔다. 주지사 선거부터 인연을 맺어온 모건도 장관에 대한 신임이 그만큼 컸다. 계획 일부를 입수한 나치는 ‘유대인인 미국 재무장관이 세운 독일민족 말살 음모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국민들을 전선으로 내보냈다. 막상 독일을 점령한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모건도 플랜을 하나둘씩 철회하자 모건도는 사표를 내고 떠난 뒤에도 ‘독일은 우리의 적’이라는 책까지 출간하며 철저한 응징을 부르짖었다.

미국이 독일의 농업국가화를 포기한 이유는 두 가지. ‘가난한 독일’이 좌익 확산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던데다 잉여자본 처리를 위해 대규모 해외 원조(마셜 플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대목은 논의 수준이었으나 미국과 영국·소련·중국이 패전 일본을 분할 점령한다는 일본판 모건도 플랜도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일본을 농업국가로 제한하려는 계획도 세웠으나 부패한 국민당이 홍군에 패해 중국이 공산화하며 없던 일이 돼버렸다. 결국 전범도 아니면서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전쟁까지 터지고 특수를 만난 일본은 발전 가도를 달렸다. 뒤틀린 역사에 애가 끓는다. 언제나 바로 펴지려나.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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