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확보 어쩌나…하얗게 질린 한일 車부품사

화이트리스트 배제 장기화 우려
현대차·모비스, 日 부품사에
3개월치 물량 요청 'SOS'
日업체도 韓제품 확보 검토


한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발동하며 상호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업계가 재고 물량 확보에 비상이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만큼 양국 정부가 수출규제를 자동차 산업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일본산 부품이나 소재 가운데 대체 가능한 제품은 국내나 중국 등에서 대체하지만, 전자제어장치(ECU) 부품과 생산라인의 제어장치 등은 대체를 할 수 없어 최소 3개월 분량의 재고를 쌓을 계획이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는 최근 덴소·파이오락스·야자키총업 등 일본 차 부품업체에 3개월분에 대한 재고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지난 7월 일본에 방문해 부품 공급망을 점검한 지 두 달 만이다. 한일 갈등 장기화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차도 내연기관차 부품을 비롯해 전기차·수소차 등 미래차 부품까지 재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자동차 부품 모듈 업체인 현대모비스(012330) 역시 7월 이후 2주 단위로 모니터링을 실시해 일본산 수입 부품에 대해 3개월 분량의 초과 재고분을 확보하고 있다. 일부 1차 협력사에는 선결제 등을 통한 지원으로 부품 확보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영향은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일본 자동차 업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자동차 문 손잡이 및 열쇠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일본 업체 알파는 지난달부터 2개월분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 자동차프레임 접합 부품을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도프레도 2~3개월분의 한국산 제품을 미리 수입해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일 양국의 자동차업계가 급하게 재고량 확보에 나선 것은 수출규제가 장기화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양국은 화이트리스트에서 상대국을 서로 배제하며 부품 수출이나 수입을 개별허가방식으로 변경했다. 허가 심사가 최대 90일 소요되는 만큼 그동안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은 3개월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애초 한일 수출규제가 발표됐을 때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미국과 유럽 지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부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물류비용을 감안해도 충분히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꾸준히 재고를 늘려온 만큼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전일 우리 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한일 경제갈등이 한층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의 전장부품에는 일본산 소자와 커넥터 등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ECU 관련 수정 공진자는 일본산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동차 공장 생산라인이 대부분 일본 제품으로 구성된 점도 문제다. 현대차그룹 생산라인의 공정 제어장치인 PLC는 과거 협력 관계였던 미쓰비시 제품들이다. PLC는 LS산전이나 독일 지멘스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현재 공장에 설치된 장비를 모두 교체하기는 쉽지 않다. 미쓰비시의 PLC 멜섹 시리즈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각종 제조업 공장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산업용 로봇은 화낙·가와사키 등 일본산을 많이 쓰고 있으며 측정기(히오키), 센서(오므론) 등도 일본 제품이 다수다. 이에 따라 생산설비의 유지보수와 관련한 부품 수급 등에 차질이 빚어지면 부품 공급제한 못지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대지진 이후 문제가 됐던 자동차용 비메모리반도체 등은 미국이나 독일업체로 변경하며 일본 리스크를 많이 줄였다”며 “7월 이후 대부분의 부품업체가 3개월치 재고를 확보하는 한편 일본의 수입 비중을 점차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시진·김기혁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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