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8월15일 금 태환 정지를 전격 선언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위키피디아
1971년 미국은 베트남전쟁 비용을 대느라 국고가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과 일본의 수출공세에 무역 적자마저 쌓여갔다. 세계는 미국의 금 지급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세계 유일의 금본위제 화폐인 달러의 지위가 뿌리째 흔들렸던 것이다. 프랑스가 먼저 움직였다. 달러를 들이밀고 금을 대거 교환해가자 영국도 동조할 조짐을 보였다. 당시 국제 금 시장의 현물가격은 온스당 50달러를 넘었다. 미국이 35달러에 금 1온스를 교환해주니 달러를 금으로 바꿔 국제시장에 내다 팔면 이보다 손쉬운 장사가 없었다. 다급해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일요일이던 8월15일 밤 금 태환 정지를 전격 선언했다. 1944년 미국 주도로 2차 대전 후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미국의 선택지는 두 개였다. 금 교환 비율을 국제 시세에 맞추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금 본위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전자를 선택하면 투기세력에 재차 공격당할 우려가 큰 까닭에 닉슨 행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였다. 이때부터 달러 지폐에서 “금화와 교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사라졌다. 세계 경제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당장 인플레이션 공포부터 덮쳤다. 때마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1차 오일 쇼크가 지구촌을 강타했다. 미국은 이때 사우디아라비아를 움직여 원유의 달러 결제를 이끌어냄으로써 달러 헤게모니를 뒷받침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2012년 4월 통화정책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하는 모습.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3조 달러를 찍어 시장에 뿌렸다. /블럼버그
유사 이래 유지해온 ‘화폐=금’이라는 등식을 깬 전례는 20세기 초에도 있었다. 1차 대전 때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영국은 1914년 금 본위제 포기를 선언하면서 기축통화국 지위를 상실했다. 하지만 달러는 파운드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당시 미국을 능가할 만한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입장에서 금 태환 정지는 ‘신의 한 수’였다. 미국은 금의 굴레에서 벗어남으로써 무한대로 달러를 찍어내는 길을 열었다. 학자 시절 대공황을 연구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실제 그랬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3차례의 양적 완화로 3조달러를 뿌려 ‘헬리콥터 벤(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한다는 의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앙은행 별곡’을 쓴 차현진 한국은행 국장은 “금 본위제 폐지로 각국 중앙은행은 비로소 경기와 물가·환율 등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역할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