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여자아이는 만 10~11세에 유방이 발달하고 남자아이는 11~12세에 고환이 커진 뒤 음경이 커지고 색깔도 짙어진다. 가슴 멍울, 음모, 여드름, 머리 냄새와 목소리 변화 등도 동반된다. 사춘기에는 유소아기에 억제돼 있던 시상하부-뇌하수체-성선(난자·정자를 만드는 생식기관) 축이 재활성화된다.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과 난포자극호르몬이 분비돼 성선을 자극하면 성호르몬이 분비된다.
◇성조숙증 진료 여아 5~9세, 남아 10~14세 많아
이런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를 뜻하는 2차 성징이 또래보다 2년가량 빠른 8세 이전 여아, 9세 이전 남아에게서 관찰되면 성조숙증(조발사춘기)을 의심할 수 있다. 성조숙증 아이는 처음에는 빨리 자라는 것 같지만 성장판이 빨리 닫혀 성인이 됐을 때 남들보다 키가 작을 확률이 크다. 특히 여아의 경우 또래와 다른 신체발달, 빠른 초경으로 소외감·스트레스를 겪고 여성호르몬 노출기간이 길어져 유방암·난소암·자궁내막암 등 여성암에 걸리거나 난임을 겪을 위험이 높아진다.
물론 초등학교 1~2학년 여아의 가슴이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다 성조숙증 때문은 아니다. 비만이나 다른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김신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체격 성장이 또래에 비해 매우 빠르거나 뼈 나이가 아이 나이보다 1년 이상 많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다”고 했다.
성조숙증 여부를 확진하려면 혈액검사(성선자극호르몬 등), 골연령검사(X선), 필요 시 머리 자기공명영상(MRI)과 가슴·성기 초음파검사를 한다. 특히 5~6세 무렵에 성조숙증이 나타나면 뇌 종양·낭종이나 신경학적 이상(결절성경화증·신경섬유종 등) 때문인지 검사할 필요가 있다. 남아의 경우 반드시 MRI 검사를 하는 게 좋다. 이런 검사와 소아내분비 전문의의 최종 판단이 필요해 이들이 상주하는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에 진료인원의 65%가 몰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성조숙증으로 진료받은 아동은 약 10만3,000명으로 2014년 7만2,000여명보다 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만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인구가 10%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성조숙증 증가세가 꽤 가파르다. 지난해 진료인원 중 여아가 89%(9만1,800명)로 남아의 8.3배나 된다.
성조숙증은 시상하부·뇌하수체의 조절 이상(중추성), 고환·난소·부신 등의 성호르몬 분비 이상(말초성), 비만, 일회용품 사용과 인스턴트 식품 섭취 증가에 따른 환경호르몬 노출, 가족력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여아는 10명 중 8명이 원인질환이 없는 반면 남아는 절반 정도가 중추신경계 종양이나 고환 질환,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다른 질환과 관련 있다고 한다.
◇“일회용기 사용·인스턴트 식품 섭취 줄여야”
정인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점이 많고 비만으로 축적된 지방세포에서 여성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조숙증으로 진료받은 여아는 68%가 9세 이하, 남아는 63%가 10세 이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5~9세가 56%, 10~14세가 43%를 차지했다. 여아는 가슴 발달, 머리냄새 변화, 음모 시작 등 성조숙 증상이 많아지면서 의료기관을 찾는 경향이 있는 반면 남아는 성조숙증보다는 키 성장에 대한 걱정으로 10세 이후에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가 흔한 탓이다. 남아는 2차 성징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부모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영석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조숙증으로 성인 키의 손실이 예상되거나 초경이 지나치게 빨라지는 경우, 특히 비만과 성조숙증을 동반한 경우 적극적 치료를 권한다”며 “국내외에서 늦지 않게 성조숙증 치료를 받으면 평균 3~5㎝ 더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성조숙증 치료는 일반적으로 성선자극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빠른 사춘기’를 늦춰 천천히, 오래 성장하도록 돕는 약물(성선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작용제)을 4주 또는 12주 간격으로 피하주사하고 6개월마다 혈액·성장판 검사를 하며 상태를 관찰한다. 필요 시 성장호르몬 주사치료를 병행한다.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영준 고려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조숙증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내분비계 질환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해 뒤늦게 병원을 찾는 부모가 적지 않아 안타깝다”며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소아내분비 전문의로부터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성조숙증을 예방하려면 일회용품·용기 사용과 인스턴트 식품 섭취를 줄이는 등 환경호르몬 노출을 최소화하고 비만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소아비만은 성인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 같은 성인병에 취약해지므로 부모가 일찍부터 식이조절·운동을 통한 체중관리에 신경을 쓰는 게 좋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