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접었지만...북미 '단계적 해법' 첫 조치 놓고 기싸움 예고

■북핵 실무협상 어떻게 진행되나
北 "美, 새로운 방법 언급 환영"
트럼프도 "김정은과 잘 지낸 게
미국서 가장 좋은일" 유화 손짓
단계적 비핵화 공감대 형성 불구
美, 北 요구 수용 여부는 미지수
성과도출 위해 절충점 찾을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회동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AFP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방법’의 비핵화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곧 재개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북한은 줄곧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했지만 미국은 완전한 핵폐기와 제재 완화를 주고받는 ‘빅딜’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주장에 유화적인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시계가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을 언급하면서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을 뜻하는 리비아식 모델은 더 이상 큰 힘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발언이 북미 간 대화에 큰 차질을 불러왔고 언급하며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북미 비핵화 협상의 수석대표로 알려진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주장했다는 보도를 흥미롭게 봤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유화적인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데 힘쓰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양자 회담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만나 “나는 적어도 3년 동안 이 나라에서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일이라고 본다. 그의 나라(북한)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그(김 위원장)도 이런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제스처는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진전된 성과를 냄으로써 재선을 노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2월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원인이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한과 미국 사이의 큰 의견 차에 있었던 만큼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서 양측이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접점을 쉽게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하노이회담에서 미국은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포기에 합의하는 일괄타결식 빅딜을 밀어붙이다가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에 비춰볼 때 이번 실무협상은 미국이 어느 만큼의 유연성을 발휘하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지도 관건이다. 양측이 큰 틀에서의 ‘단계적 해법’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첫 단계’에 어느 조치를 포함할지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노이회담에서 북한에 영변 핵시설 신고·검증, 폐기를 요구했던 미국은 영변은 물론 그 외 핵 시설이나 무기 프로그램의 폐기까지 꺼낼 수 있다. 북한은 체제 보장과 함께 제재 완화 대상으로 금강산·개성공단 카드를 낼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미가 모두 연말까지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어 우선 단기적으로 합의 가능한 수준의 주고받기식 협상을 이뤄냄으로써 비핵화 대화를 궤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1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나 비핵화 최종 단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앞으로 나아가면 미국도 동시에 그럴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며 북한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첫 단계는 지난 하노이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북한은 대남 비난을 재개하며 미국에 대한 우회적 압박에 나섰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정세악화의 책임을 오도하는 궤변’이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조선반도 정세악화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9월 하순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후 북한 매체들의 전반적인 대남 비난이 한동안 수그러드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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