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충분한 논의없는 탈원전·교과서 수정은 헌법정신 흔드는 것"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주52시간제·최저임금 인상도 경제자유 제약
정치적 의도로 개헌땐 국론분열만 초래할 뿐
권력이 인사권 남용하면 검찰 독립 물건너가
조국 법무장관 수행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헌법학자인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대신동 자택 근처에서 헌법재판소가 제작한 소책자 ‘대한민국 헌법’ 을 들고 헌법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등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욱기자

정년퇴임 이후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헌법학자인 최대권(82) 서울대 명예교수는 늘 법학자의 소명을 생각한다. 특히 자택 인근에 있는 식당인 ‘존재의 이유’ 앞을 걸어갈 때마다 법학자의 지향점을 되새긴다. 최 교수는 “법학도의 목표가 고시 합격이 될 수는 없다”면서 “세상을 바르게 이끄는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 특강을 통해 헌법정신을 설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교수는 지난 20일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헌법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민주공화국을 꼽은 뒤 “문재인 정부가 규제 남발 등을 통해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이 검찰 개악이 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 미국 유학을 갈 때 추천서를 써준 인연이 있다. 그는 한 일간지에 쓴 칼럼을 통해 “법적 정의와 보편적 양심을 좇아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을 기대한다”며 조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2002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11년 동안 한동대 석좌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몇 년 전부터는 서울대 명예교수협의회 차원에서 종종 고등학교에 나가 재능봉사를 하고 있다. 주로 법과 정의,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친다. 요즘에는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포럼에 참여해 헌법정신과 교과서 개정 등에 얘기했다.

-요즘 헌법정신과 헌법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은 나라의 설계도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민주공화국 등 네 가지다. 대한민국이라는 고층 건물을 떠받치는 중심기둥인 셈이다. 네 기둥 중 하나라도 훼손되면 대한민국은 위태롭게 기울어지거나 붕괴된다. 네 가지 헌법정신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개인의 자유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헌법 전문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표현돼 있다. 헌법 10조에 규정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기본적 인권이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권력을 비롯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자유가 필수적이다. 자유가 뒷받침되는 민주주의라야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 분립 원리가 작동돼야 가능하다. 권력 분립이 이뤄지지 않아 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북한이나 중국 등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 외에도 여러 수식어가 붙고 있는데.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외에도 인민민주주의, 대중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개방적 개념이다. 심지어 광장에서의 박수갈채나 인민재판도 직접민주주의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보호가 지켜지고 기본권인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언급했다. 이 가운데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절차적 요소를 갖춰야 자유민주주의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헌법정신 중 또 다른 기둥인 시장경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시장경제는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 제도의 기초 위에 서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계약의 자유 등으로 구체화된다. 법에 의한 권력 통제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 없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작동할 수 없다.

-시장경제와 경제 민주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외조항으로 비칠 수 있는 경제 민주화도 결국 시장경제라는 큰 틀을 잘 가동하기 위한 방법이다. 헌법 제119조 1항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해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했다. 119조 2항은 적정한 소득 분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헌법 37조 2항은 공공복리 등을 위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더라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했다. 현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한 재분배 정책 등은 경제적 자유라는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추진됐다. 논의 주체는 1차적으로 국회, 2차적으로 헌법재판소가 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정신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보는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 헌법가치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규제 남발이 대표적 사례다. 국회 논의도 거치지 않고 정부 산하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 탈(脫)원전정책과 4대강 보 철거를 추진하는 것은 헌법정신 훼손이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는 제왕적 대통령 행태도 헌법정신을 흔드는 것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코드 인사로 삼권분립을 쇠퇴시키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장관들이 독자적 권한 행사를 제대로 못하고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는 서기 같은 역할로 전락한 것도 헌법정신과 거리가 있다.

-현 정부는 역사·사회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고,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를 대한민국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한 헌법을 흔드는 행위이다. 대한민국을 ‘국가’가 아닌 ‘정부’로 격하하는 것도 태어나서는 안 될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점을 은연중에 알리기 위한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건국 시점을 놓고 여권 인사들은 1948년이 아니라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1919년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가의 3요소는 국민과 영토·주권이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임시정부는 국가는 아니었다. 1948년에 건국됐다고 보는 게 맞다.

-현 정부는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이 시대에 맞지 않다면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헌은 불필요하다. 정치적 의도로 개헌을 추진하면 국론 분열을 가져올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를 위해 개헌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과도한 대통령 권한 행사는 헌법 탓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문화 때문이다. 현행 헌법정신을 잘 실천하면 된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 또는 국가연합을 위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여권의 개헌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연방제 개헌을 추진해서는 절대 안 되고 그런 개헌은 가능하지도 않다. 연방제는 북한이 전략전술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현실성이 없는 통일 방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을 통해 검찰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인권 보호를 실현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권력이 인사권을 남용하면 검찰 독립성은 물 건너간다. 공수처를 설치해도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오히려 권력이 통제하기 쉬운 장치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법무부 장관을 맡는 것도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검찰 개혁이라고 포장하지만 본질적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오히려 검찰 개악이 될 우려가 있다.

-법무부와 여권은 최근 조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헌법정신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사실 공표는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도 고려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피의자를 압박하는 피의사실 공개는 제한해야 한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개를 많이 활용해온 여당이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외치는 것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다.

-최근 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재산·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액을 차등 산정하는 재산비례 벌금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발상으로 헌법 11조의 평등권에 위배될 소지가 크고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 재산을 가진 게 죄가 될 수는 없다.

-조 장관이 과거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갈 때 추천서를 써준 은사로 알려졌는데.

△서울대 법대를 나온 조 장관이 마침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버클리대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노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조 장관이 찾아와 너무 깍듯한 태도로 부탁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서를 써줬다.

-자신의 부인이 기소된데다 본인도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사가 법무장관에 임명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 장관은 좁은 의미의 법 개념만 설정해서 의혹이 결정적 증거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법무장관이라면 인격과 언행일치도 보여주고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법무장관직 수행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지도자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가족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법무장관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1937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고를 졸업했다. 중학생 시절에 6·25를 맞아 세 번이나 피란을 가야 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와 버클리대(UC버클리)에서 각각 법학 석사과정을 거쳐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1년 동안 보훈처 사무관 생활도 했다. 그 뒤 30년 간의 서울대 법대 교수를 거쳐 한동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그는 법제처 정부입법자문위원장과 선거방송심의위원장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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