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이복현 부장검사)는 23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서울 강동구의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바이오가 부채로 간주되는 콜옵션을 숨겼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지난 2015년 상장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바꾸는 등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금융당국이 수사 요청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라며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경위에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외관상 수사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들여다보는 것이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삼성바이오 회계 변경→삼성바이오 유가증권시장 상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부정의혹을 규명하겠다는 게 검찰의 속내다.
이미 검찰의 수사는 상당한 수준 진척됐다. 국민연금이 던진 주주총회 찬성표로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맞바꿀 수 있게 되면서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물증과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특히 딜로이트안진과 삼정KPMG 등 회계법인들이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평가할 때 삼성의 요구에 따라 합병비율을 조작했다는 증거는 이번 국민연금 압수수색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딜로이트안진과 삼성KPMG 회계사들로부터 “삼성이 주문한 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35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병비율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판단근거로 사용돼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내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삼성이 요구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식으로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는 회계사들의 진술은 검찰 수사의 터닝포인트”라며 “삼성의 부당승계 의혹 수사가 종착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어 최고위층 소환 조사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입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맞서 삼성 측 ‘백기사’ 역할을 수행한 KCC도 압수수색했다. 양사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과 KCC 내의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과 관련해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자산운용 등 삼성 금융계열사도 동시 압수수색했다. 그룹 지시에 따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물밑으로 어떤 지원을 했는지를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호·오지현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