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델파이에서 분사한 앱티브(APTIV)와 미국 보스턴에 40억달러(약 4조7,800억원) 규모의 자율주행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현대차가 투자하는 20억달러는 역대 외부 투자 중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완성차 양산 기반과 앱티브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해 급성장 중인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관련기사 5면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합작법인 지분을 50%씩 나눠 가지며 투자규모도 20억달러씩으로 동일하다. 합작법인은 보스턴에 설립될 예정이며 앞으로 국내에도 자율주행 연구거점(R&D센터)을 만들 계획이다. 오는 2022년까지 완성차 업체 및 로보택시 사업자 등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는 현금 16억달러 및 자동차 엔지니어링 서비스, 연구개발 역량, 지식재산권 공유 등 4억달러의 가치를 포함해 총 20억달러를 출자한다. 앱티브는 자율주행 기술과 지재권, 700여명에 달하는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인력 등을 합작법인에 출자한다. 앱티브의 전 세계 연구거점은 그대로 유지된다.
앱티브는 지난 2017년 미국 자동차부품 기업 델파이에서 분사한 회사로 차량용 전장부품 및 자율주행 전문기업이다. 순수자율주행 기술력은 웨이모·GM에 이어 세계 3위로 평가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인류의 삶과 경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함께 전진하는 중대한 여정이 될 것”이라며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를 선도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민형기자 kmh204@sedaily.com
현대차의 풀베팅…제조사 넘어 자율주행 ‘퍼스트무버’ 도약
자율차SW기업과 40억弗 공동투자
보스톤에 2022년까지 플랫폼 완공
“시너지 커…미래차 생태계 선도 자신”
현대자동차그룹이 회사 설립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2조4,000억원을 ‘자율주행’ 기술에 쏟아부었다. 내연기관 업체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메이저 카 메이커’로서 업계를 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740만대를 팔면서 글로벌 완성차 시장 ‘톱5’ 위상을 다졌지만 출발선이 ‘리셋’되는 미래차 시장에서도 위치를 다지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다양한 전략투자를 하며 시장과 발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 수준이어서 규모 면에서는 미래차 업체들을 선점한 외국 자동차 업체 투자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이번에 2개의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고도 남는 수준의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를 결정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연산 30만대 규모의 해외공장을 건설하는 데는 약 1조원가량의 자금이 투입된다.
이미 해외에서는 우버나 구글 등 신생 업체들뿐 아니라 전통적인 완성차 기업들의 자율주행 기술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지난 2016년 일찌감치 인수해 시험주행을 하며 관련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구글(알파벳)의 웨이모도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차를 이미 운행하며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오는 2030년께 미국 승객 이동 거리의 4분의1을 자율주행차량이 책임질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도 전 세계 자율주행 시장이 2021년 5만1,000대에서 2040년 3,370만대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장 규모도 2020년 221조원에서 2035년 1,348조원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율주행차량이 공유경제와 맞물려 확산할 경우 완성차 업체들이 개인에게 차를 팔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이 미래차 기술에 앞다퉈 투자하는 것도 이런 변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앱티브(APTIV)는 순수 자율주행 분야에서 ‘톱3’에 드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업체다. 2015년과 2017년 유망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마티카와 누토노미를 인수해 관련 기술 역량을 일거에 끌어올렸다. 현재 보스턴에 있는 자율주행사업부를 중심으로 우버 등 자율주행 업체가 시험주행하고 있는 피츠버그, 아시아의 싱가포르 등 거점에서 기술 개발 중이다. 이들 거점에서 연구하는 임직원은 700여명에 달하며 1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고 있다. 합작법인은 이들 거점뿐 아니라 서울 등 국내에도 연구시설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갖춘 회사의 인적자원과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함께 공유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나갈 것”이라며 “자율주행차 개발에 현대차·기아차·제네시스의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투입할 예정으로 상세 차종은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앱티브에 단순 지분투자하는 게 아니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인력과 기술을 투입해 공동개발하는 형태의 ‘정공법’을 택한 점도 눈에 띈다. 합작기술을 통해 자동차 기획단계부터 자율주행을 고려한 차종을 개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미래기술에 대한 확장성도 함께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볼보와 오토리브가 합작해 설립한 제누이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지분투자 정도의 협력체계만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앱티브와 공동기술 개발을 통해 운전자의 개입 없이 운행되는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시장에 선보일 방침”이라며 “자율주행차량의 상용화를 위한 원천기술 확보와 적용 차량 확대를 통해 그동안 시장을 뒤따라가던 것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앱티브 역시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기업인 현대차그룹과의 합작법인 설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단순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상용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윈윈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케빈 클라크 앱티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파트너십은 자율주행을 비롯한 차량 커넥티비티 솔루션, 스마트카 아키텍처 분야 앱티브의 시장 선도 역량을 보다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력과 연구개발 역량은 자율주행 플랫폼의 상용화를 앞당기기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