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준안에는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며 노조활동을 근로활동으로 인정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지금도 노조가 파업권을 남용하는데 이처럼 바뀔 경우 산업현장의 힘은 노조 쪽으로 더욱 기울어질 게 뻔하다. 경영계도 이를 우려해 끊임없이 사용자방어권을 보장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정부는 눈과 귀를 닫았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내 점거, 집회시위 금지 등은 ILO 비준으로 노동계에 더욱 기울어질 운동장의 재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들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이 의무사항도 아니고 무역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없지만 FTA를 핑계로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FTA 협정에서는 전문가 패널 구성 외에 더 이상의 제재 조치가 규정돼 있지 않다. ILO 협약 비준도 노력의무를 부과했을 뿐 8개 협약 비준 시점을 명시하지도 않았다. 무역분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협정의 국회 비준 과정에서도 점검됐다. 미국과 일본도 자기 나라의 경제상황에 맞춰 8대 기본협약 중 일부만 비준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편향된 정책 때문에 경제는 성장정체와 고용참사 등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국회는 ILO 협약이 나라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독소조항을 걸러내야 한다. 만일 여당이 야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망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