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피어59스튜디오에서 열린 ‘웨이고 블루’ 간담회에서 정주환(오른쪽)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오광원 타고솔루션즈 대표와 모빌리티 서비스 혁신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사진제공=타고솔루션즈
내가 처음 스마트폰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1년 가을의 일이었다. 때마침 사용하던 구형 폴더폰이 수명을 다했고 그 기회에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것이 2007년 1월이었으니 비교적 늦은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내 첫 스마트폰은 그 무렵 시판 중이었던 ‘아이폰4’였다. 전자기기에 비교적 둔감한 내게 스마트폰 세상은 신세계였다. 금융기관 애플리케이션을 깔자 은행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직접 갈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곧 배달앱 서비스가 시작돼 전화를 걸지 않아도 치킨이나 짜장면을 주문할 수 있게 됐고 음식값은 휴대폰 요금에 합산해 결제할 수 있어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어졌다. 자기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해 라디오처럼 이용했다. 낯선 곳에는 지도앱을 켜지 않고는 갈 수 없게 됐다. 스마트폰은 내 일상생활의 점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이런 수많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뒷면의 뚜껑을 열어보면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배터리다. 그 뒤 전자기판에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하는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칩 등이 달려 있다. 전파를 수신하는 안테나도 꽤 큰 부품이다. 그 외 스피커와 마이크·카메라·진동모터 등이 곳곳에 달려 있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해주는 것은 각종 센서들이다. 위성항법장치(GPS)·가속도·자이로 센서는 스마트폰의 위치와 이동방향·회전상태를 감지한다. 온도·습도·기압을 측정하는 센서도 있다. 지자기 센서는 주변의 자기장을 감지해 방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700~800개에 달하는 부품들을 모아 한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로 설계하고 오류 없이 작동하도록 조립해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스마트폰 기술의 중요한 부분이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용 스마트기기는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핵심적인 연결고리다. 이는 스마트폰 자체의 기능성과 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편재(遍在)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현재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에 달한다. 특히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는 거의 100%에 육박하고 있다. 온 국민이 음성 및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고 고해상도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장착한 강력한 컴퓨터를 한 대씩 휴대하고 다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회 전반에 고르게 퍼져 있는 컴퓨팅 파워는 기존의 기능을 보다 빠르게 만드는 것을 넘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이제는 벌써 식상해졌지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감이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대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인간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모빌리티 분야의 예를 들어보자. 2015년 3월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택시기사와 승객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개념상 기존의 콜택시 서비스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콜택시 회사라는 중개자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택시 업계로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택시 호출앱 서비스는 여러모로 편리했고 다음카카오에서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스마트 정보기술(IT) 업계는 모빌리티 시장에 첫발을 무사히 내디뎠다. 이용자 수도 꾸준히 늘어 불과 2년 반 만에 무려 2,300만명이 ‘카카오T’ 앱을 사용하게 됐다.
모빌리티 혁신의 공유 서비스인 ‘타다’의 드라이버와 차량. /사진제공=타다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일이 일반화되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호출앱으로 택시기사들이 승객들의 행선지를 미리 알 수 있게 되자 단거리 승객을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심야 시간대 강남이나 종로 부근에서는 웬만큼 멀리 가지 않으면 카카오택시의 응답을 받기 어려워졌다. 예전 같으면 도로변에서 택시를 무작정 잡아타고 기사와 협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 시대에는 그럴 가능성이 원천봉쇄됐던 것이다. 승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카카오 측은 ‘단거리 콜 인센티브’라는 기술적 해결책을 내놓았다. 앱 배차 알고리즘을 변경해 단거리 운행을 여러 차례 받아들인 기사에게 장거리 콜이 먼저 배당되도록 했다. 하지만 단거리 승차거부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비교적 낮은 택시요금과 법인택시 사납금제도라는 택시 업계의 근본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한 호출앱은 기존의 복잡한 사회관계 위에 기술적 서비스를 덧씌운 것에 불과했다. ‘카카오카풀’과 ‘타다’ 등 스마트 모빌리티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플랫폼 택시 사업을 시도한 것은 기존 택시 업계의 지형을 흔들어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이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2018년 10월의 택시 파업 이후 정부는 이른바 ‘상생안’을 만들기 위해 중재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적절한 절충안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가 낳은 사회적 갈등의 사례다.
모빌리티의 미래를 상상함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온 국민이 스마트기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매 순간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이 사실은 택시기사가 단거리 승차를 거부하고 플랫폼 택시를 반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5년부터 모빌리티 영역에 뛰어든 카카오는 지금까지 일부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아직 이 사업에서 수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미래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17년에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 보고서가 “사회적 차원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올해 발간된 세 번째 보고서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심야 시간에 택시 초과수요가 많은 지역은 (예상할 수 있듯이) 역삼동과 종로, 서교동과 이태원이다. 그런데 역삼동과 종로는 자정 전후로 수요 최고치가 나타나고 서교동은 자정과 오전1시에, 이태원은 오전2시 이후에 피크를 이룬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스마트폰 기술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5년 동안 한국인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카카오모빌리티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무엇인가. 지금 현재로서는 이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가 궁금해해야 할 것은 카카오T 사용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맛집이 어디인지가 아니다. (카카오내비 데이터에 따르면 정답은 전북 군산의 이성당 본관이다.) 정말로 중요한 질문은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로 카카오모빌리티는 한국인과 한국인의 모빌리티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새로운 지식을 활용해 그리고 있는 미래 모빌리티는 어떤 모습인가. 그 전모가 드러날 때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