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조 장관은 과천정부청사로 출근하며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과) 통화하시면서 신속하게 하라는 말씀 여러 번 하셨다는” 취재진의 질문을 끊으며 “어제도 말씀드렸다”며 “(이는) 제가 장관으로서 압수수색에 개입이나 관여한 것이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의 건강을 배려해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거는 인륜의 문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검에서도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당사자도 부적절하다고 느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기자 지적에는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청사로 들어갔다.
전날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조 장관이 지난 23일 자택 압수수색 당시 현장에 나가 있던 담당 검사와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촉발됐다. 조 장관은 답변 과정에서 “‘(배우자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놀라지 않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고 남편으로서 말한 것이 전부”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조 장관이 당시 통화한 검사에게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는 취지의 말씀을 여러 번 했다”며 “전화를 받은 검사는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하겠다고 응대를 수 회 했고 그런 과정에 심히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은 조 장관이 담당 검사가 전화를 받자마자 “장관입니다”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사는 “특수부 검사 ○○○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검사가 장관의 존재 자체를 압력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27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 같은 법제도 개혁뿐만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 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사실상 조 장관 수사를 겨냥했다.
강기정 정무수석 역시 “검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청와대 외압 의혹에 불을 지폈다. 강 수석은 지난 26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열린 정책박람회 강연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 중이니 검찰에 수사를 해도 조용히 하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했다”며 “검찰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대통령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회담을 하는 동안 검찰은 듣지 않고 우리가 보았던 그런 일(조 장관 자택 압수 수색)을 했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이는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7일 점심을 먹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청와대 입장이 나온 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헌법정신에 입각해 엄정히 수사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냈다. 대검찰청은 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검찰은 헌법정신에 입각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조 장관을 사실상 비호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검찰 내부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 대검 간부는 “일개 평검사만 해도 가족이 수사받는 경우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인사권자인 장관이 ‘인륜’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명백한 이해충돌이 정당화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수사팀은 ‘사실상 검사로서 끝났다’는 것을 각오하고, 그야말로 직을 걸고 수사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제를 당부하는 게 아니라 검찰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다음 인사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인사권자에 대한 공개비판을 할 수 없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