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덤에서 바라본 만물상.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에게 “성주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처음 나오는 대답이 “참외”다. 그도 그럴 것이 참외는 오래전부터 성주를 상징해온 과일이고 지금도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참외의 본향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이들은 성주의 진면목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들이다. 성주에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관광의 보고가 하나 숨어 있는데, 바로 가야산이다.
사람들은 가야산이 합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가야산은 합천에도 있고, 거창에도 있다. 하지만 가야산은 산 전체 7만6,000㎡ 중 40%에 해당하는 면적을 경상북도 성주군에 의탁하고 있다.
그래서 기자는 이번에는 성주군에 있는 가야산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2년 전 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섭렵했던 성주군 무흘구곡의 잔상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고 있는데, 소문으로 접한 가야산 만물상의 풍광이 또다시 기자에게 손짓했다.
성주군은 KTX를 이용하면 김천구미역에서 내려 한 시간도 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88고속도로가 확장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었다.
만물상으로 오르는 도중 등반로에서 내려다 본 심원사의 전경.
게다가 성주 쪽 가야산은 영남에서는 보기 힘든 골산(骨山)으로,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바위로 이어져 있고 코스도 험난해 역설적이게도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금지됐다. 이후 2010년 만물상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비로소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등반 직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있는 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박나영 국립공원공단 자연환경해설사는 “힘들 테니 혼자 다녀오겠다”는 기자의 빈말을 눈치챘는지 안내를 자청하며 앞장서 나섰다.
박 해설사는 “1만가지 형상이 있다는 가야산 만물상의 경관에 매료돼 바위들의 이름도 붙이고 공모도 하고 있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정신도 몸도 건강해지는 직장이어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들어올 수 있다”고 자랑했다.
성주군 가야산 만물상 직전 등반로에 있는 기원바위.
만물상으로 가는 길은 초입부터 치고 오르는 코스여서 만만한 산행은 아니다. 그런 만큼 만물상을 사람들에게 친숙한 산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등반 도중 곳곳에서 자재를 운반해 등산로를 조성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길은 불편함 없이 정비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가야산의 높이는 1,433m로 남쪽에 있는 산 중 만만한 편이 아니다.
합천 쪽에서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편안하지만 성주 쪽 백운동에서 오르는 길은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이 펼쳐진다.
기자는 칠불봉 등정은 후일로 미루고 비경이라고 소문난 만물상을 거쳐 서성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다시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회귀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성주 가야산의 부처바위. 영락없이 불전을 향해 예를 올리고 있는 불자의 뒷모습이다.
만물상이 가까워질수록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하나둘 자태를 드러냈다. 아래쪽에서부터 코끼리형제바위·부처바위·칼자국바위·시루바위·흔들바위·기원바위·거북바위·호박바위·도깨비바위·주름바위가 이어졌다.
가까이 있는 바위는 저마다 자신의 자태를 뽐내기도 하고, 보는 이를 압도하기도 하지만 상아덤에 올라서 보면 그 많은 바위의 군상은 서로 어울리며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연출한다.
산행을 늦게 시작한 탓에 기자는 상아덤에서 만물상을 잠깐 바라본 다음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길은 등락을 되풀이했던 세 시간 거리의 등산길과 달리 경사가 완만한데다 길옆으로 계곡이 이어져 고단함이 덜했다. 시간도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 해설사는 산행 중에 만나는 등산객들에게 끊임없이 “무리하지 말라” “혼자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그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등산하는 동안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주군 백운동 가야산 등반로는 신중해야 하지만 도전욕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코스다.
/글·사진(성주)=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