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관리처분계획 단계인 재건축·재개발단지를 대상으로 10월에 시행될 예정인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6개월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또 제도 시행 대상 지역도 ‘동 단위’로 핀셋 지정할 계획이다. 상한제 입법예고 이후 소급적용 위헌 논란, 주택공급 절벽 우려에 따른 신축 아파트 값 급등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자 국토교통부가 ‘한발’ 물러선 셈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부·금융위원회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 브리핑에서 ‘최근 부동산 시장 점검 및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상한제 시행령 시행 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거나 신청한 재건축·재개발단지를 대상으로 시행령 시행 이후 6개월까지 입주자 모집공고를 신청할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입법예고 초안에는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정비사업단지에 대해 소급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향후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공급위축 등 부작용을 고려해 ‘동 단위’ 지역을 핀셋 지정하는 방식도 추진한다. 국토부는 이 같은 보완방안을 2일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해 이달 말까지 주택법 개정을 마무리하고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주택대출 규제는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시가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공적보증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주택매매업자나 법인이라도 주택임대사업자와 마찬가지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 규제가 도입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정부 발표는 강남 아파트 값이 3.3㎡당 1억원 시대를 여는 등 서울 주택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보완대책으로 내놓은 것 같다”며 “저금리와 상한제 역효과로 서울 집값이 하락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순구·강동효기자 soon9@sedaily.com
<개포4 등 수혜…둔촌·반포주공은 예외적용 쉽지 않을듯>
이주·철거 등 시간 빠듯…6개월 유예 혜택 단지 많지 않아
공급부족 근본 해결 못해…상한제 철회 안하면 미봉책 불과
정부, 분양가상한제 지역·시기 이달말 시행령 개정후 결정
박선호(오른쪽) 국토교통부 차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용범(가운데) 기획재정부 차관 등과 함께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정부의 이번 발표는 강남 아파트 값이 3.3㎡당 1억원 시대를 여는 등 분양가상한제 입법예고 이후 나타난 각종 역효과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리처분 단계인 재개발·재건축에 대해 시행령 시행 이후 6개월 이내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상한제에서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선호 국토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현재 관리처분계획 인가는 받았지만 아직 분양(입주자모집) 단계에 이르지 못한 단지는 61곳, 6만 8,000가구 규모”라고 말했다. 이들 단지는 내년 4월 이내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국토부는 그간 상한제로 공급위축 우려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실제 이 같은 혜택을 받는 단지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규정은 100% 철거가 이뤄져야 분양이 가능하다. 철거 중인 강동구 둔촌주공, 잠실 진주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반포주공 1단지(1·2·4지구) 등은 예외규정 적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분양을 앞둔 개포주공 4단지는 상한제를 피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 6개월 유예…혜택 단지 적을 듯=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지만 입주자모집공고를 시행하지 못한 아파트는 61개 단지, 6만 8,000여가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 이주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6개월 안에 입주자모집공고까지 서둘러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다. 1만2,032가구로 단일규모로는 국내 최대 재건축단지인데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입주자모집공고 일정이 어그러졌다. 조합에서는 6개월 유예 기간 안에 입주자모집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비 업계에서는 시간상 촉박하다고 평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민 합의만 빨리 이뤄지면 가능한데 워낙 조합원이 많은 단지여서 6개월 안에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는 내년 4월 내 사실상 일반분양이 어려워 상한제 적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포주공1단지는 현재 조합원 간 소송 중이고, 이에 따라 당초 이달부터 시행하려던 조합원 이주도 중단된 상태다. 조합 간 소송을 마무리하고 당장 이주를 시작하더라도 내년 4월 분양이 쉽지 않다.
반면 올해 말∼내년 초 분양 예정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는 상한제를 피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불거진 분양가 문제로 일반분양이 중단됐던 세운3구역 등 세운재정비촉진지구도 내년 4월까지 분양을 마치면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을 빨리 진행해도 난관은 있다. HUG의 분양심사를 받아야 하는 만큼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HUG의 분양가심사 기준이 강화된 만큼 분양가상한제보다 더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상한제 철회 없이는 미봉책=아울러 정부는 분양가상한제를 동(洞) 단위로 핀셋 지정하기로 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시군구별로 지정돼 있지만 분양가상한제가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범위를 줄여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박 차관은 이와 관련해 “정부가 현재 동 단위의 주택조사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며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필요한 지역을 정교하게 선별해 효과를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동 단위로 지정하면 공급이 위축될 우려도 줄 것으로 내다본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시행한 전국 단위의 분양가상한제와 달리 극히 일부 지역에만 운영하는 것이어서 공급위축 등의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과 관련해 일부 보완한 점은 긍정 평가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일반 개발사업과 리모델링은 종전대로 상한제가 적용된다. 아울러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현재와 같은 공급절벽 우려 등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의 이번 규제가 일부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가지겠지만, 실수요 위주로 움직이는 상승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분양가상한제 철회 없이는 결과적으로 공급절벽 우려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강동효·이재명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