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실화한 디플레 마냥 외면만 할건가

공식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로 1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1965년 관련통계가 집계된 이래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대내외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이 장기화하는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지적에 “일시적인 저물가일 뿐”이라며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저효과와 무상교육 등에 따른 현상으로 디플레이션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은은 “연말에 물가가 반등할 것”이라는 이례적인 입장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거꾸로 물가’를 둘러싼 낯선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간기관들도 “일시적이라도 저물가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경고를 쏟아내는 판이다. 우리 여건상 물가하락이 소비감퇴와 생산·투자축소로 이어져 일본식 불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디플레이션 공포를 키우는 것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추락이다. 9월 수출은 전년 대비 11.7%나 줄어들며 10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업들은 물건을 팔지 못해 재고 부담에 허덕이고 시장에는 초저가상품이 넘쳐나고 있다. 수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무기력과 정체의 늪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냉철한 상황인식과 정책적 대응이다. 저물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나 잠재성장률 하락과 맞물려 우리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미칠 우려가 크다. 이런데도 정부는 기껏해야 상품권 발행을 늘리고 관광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식의 임시처방을 내놓는 데 머물러 있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은 오직 조국 사수에만 골몰해 나라 경제를 외면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정운영의 초점을 경제 살리기에 맞춰 감세와 규제혁파·노동개혁 등으로 경제 활력을 높이고 투자와 소비심리를 회복시키는 데 전력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와 이념에 휘둘려 정책을 실기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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