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에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참가한 18세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자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이 2일(현지시간)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대가 전날 경찰 총격을 ‘피의 빚’으로 부르며 반드시 갚을 것임을 다짐하는 등 홍콩 사태가 재차 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인내심을 잃어간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자칫 홍콩이 ‘제2의 톈안먼사태’의 무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날 경찰 총에 맞은 청즈젠이 재학 중인 호췬위중등학교 학생들과 졸업생·행정직원 수백명은 이날 학교 밖에서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연좌시위를 벌였다. 청즈젠은 병원에서 탄환적출 수술을 받은 후 일단 상태가 안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경찰은 전날 이 학생에게 총격을 가한 것을 비롯해 경고사격 등 총 6발의 실탄을 발사한 데 대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도심에서는 직장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경찰의 실탄 발사에 항의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센트럴 지역의 체이터공원에서 출발해 주요 도로들을 따라 진행된 행진으로 도심 교통은 마비됐다. 거리로 나온 직장인 케이시 차우(26·여)씨는 “학생이 실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로 나왔다”면서 “우리는 최근 몇 개월에 걸쳐 경찰의 권력남용 악화를 목격해왔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또 다른 시위대는 지난달 29일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96명이 폭동죄로 기소된 웨스트카우룽의 법원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SCMP는 “지난 6월 송환법 반대시위가 벌어진 후 사상 최악의 폭력사태로 도시가 휘청이고 있다”고 전했다.
2일 홍콩 췬완 지역의 호췬위중등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전날 경찰이 모교 학생인 청즈젠에게 실탄을 쏜 것에 항의하는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학생에게 실탄을 쏜 경찰을 ‘살인자’라고 했으며 범민주진영 의원 24명도 공동성명을 내고 경찰을 비난했다.
전날에 이어 2일에도 홍콩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시위사태 격화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전날 시위는 코즈웨이베이·애드미럴티 등 도심은 물론 췬안·툰먼 등 홍콩 전역의 총 13곳에 이르는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데다, 6월 초부터 시작된 송환법 반대시위 중 가장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며 각종 신기록을 양산하기도 했다. 1일 시위에서 체포된 사람은 180명 이상, 부상자는 74명에 달했으며 전체 91개 지하철역 중 절반이 넘는 47개 역이 폐쇄됐다.
시진핑 중국 지도부가 총력을 기울여 준비한 건국 70주년 행사가 홍콩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로 빛을 바래자 일각에서는 국경절 연휴 이후 시 국가주석이 홍콩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홍콩 경찰의 실탄 발사에 미국 공화당 의원들과 영국·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시위가 폭력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위가 격렬해져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중국군이 투입되거나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국경절 연휴 이후 시 주석의 계산법이 바뀔지 여부가 문제”라며 “이미 미국과의 무역전쟁부터 낮아지는 경제성장률까지 무수한 도전에 직면한 중국 지도부가 홍콩 시위사태에 대한 인내심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또 시 주석이 국경절 기념사에서 홍콩의 안정과 번영,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강조한 직후 실탄 발사 사태가 일어난 만큼 최고통치자인 자신의 명성이 훼손됐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가 다음주 예정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홍콩이 중국의 국제무역 활동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