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고 통보한 남자친구를 붙잡고 싶던 A씨(21)는 ‘무엇이든 해결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반신반의 끝에 전화해보기로 했다. 대행사는 “A씨의 지인으로 연기해 남자친구에게 A씨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하겠다”고 말했다. A씨는 남자친구의 번호를 직원에게 연결해줬고, 며칠 뒤 “너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 조금 더 만나보자”는 남자친구의 답변을 받았다. 직접적인 감정 접촉 없이 원만히 일을 해결한 A씨는 직원에게 “당신 덕분이다. 고맙다”고 전했다.
#상사와의 불화로 직장을 옮기고 싶은 B씨는 퇴사 방법을 고민하던 도중 지인의 추천으로 ‘퇴사 대행 서비스’를 찾게 됐다. 직접 얼굴 보고 사표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직원의 안내에 B씨는 사표 처리를 대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은 B씨 대신 인사팀 담당자와 직접 통화해 위임 사실을 밝히고 B씨의 사직서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짐은 택배로 받고 사표 처리가 수리된 것을 확인한 뒤 A씨는 직원에게 사례금을 지급했다.
‘무엇이든 대신해드리는’ 역할 대행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빨래, 설거지 등 전반적인 집안일을 대신해준 청소 대행업은 이제 일상 속으로 더 스며들었다. 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 업체는 ‘모든 심부름을 20분 이내에, 2,000원부터’를 콘셉트로 생활 쓰레기 배출, 음식 배달, 편의점, 우체국 대신 가기 등 사소하지만 직접 움직여야 하는 귀찮은 집안일을 대신해준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는 건 2,000원, 일반 분리수거는 3,000원이다. 집사로 불리는 직원들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상주해 평균 20분 내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1만 세대 서비스로 시작한 업체는 올해 말 30만 세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약속된 시간에 집으로 찾아와 빨래를 수거한 뒤 24시간 내에 세탁된 옷을 가져다 놓는 앱도 인기다. 세탁기·건조기가 없는 1~2인 가구를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업체는 “시간과 공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요즘 트렌드”라며 “공유 주택들도 많아지면서 제휴 문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속 노동이 아닌 ‘감정’ 노동까지 대신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별 대행 서비스’는 애인과 이별을 위해 대행 직원이 전화로 메시지를 통보한다. 남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거지만 이용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 엄마 등 가족 역할을 대행해 주기도 한다. 아빠 목소리로 둔갑한 직원은 이용자의 애인에게 전화해 핑계 거리를 만들어주고 이별 절차를 밟는다. 해당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사이트는 “부모 대행, 선배 대행 등 각종 역할을 대신해 드립니다”라며 “다년간의 노하우로 절대 들통 나지 않을 것”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서비스 이용자는 “나는 신분이 노출돼 있지만 대행 직원은 어떤 사람일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하다”며 “내 개인정보가 나중에 어떻게 이용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걱정했다. 대행 직원의 업무 범위도 논란이다. 대행서비스 업체 직원인 김모 씨는 “남성고객으로부터 ‘성관계도 가능하냐’는 문의를 받을 때는 난감하다”고 말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