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무책임한 '촛불 숫자' 논쟁

윤홍우 정치부 차장




광장에 모인 촛불의 숫자를 놓고 꽤 생산적인 논란이 벌어졌던 것은 2016년 말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이 광화문을 가득 메운 그해 11월의 집회는 연구실 속 과학자들의 호기심까지 자극했다.

경찰이 통상 집회인원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던 ‘페르미 추정법’이 당시 과학자들에 의해 재검증됐다. 원병묵 성균관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동인구에 의한 집회 인구 추산법’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경찰의 페르미 추정법이 3.3㎡당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계산해 총인원을 추산하는 기법이라면, 원 교수는 유동인구까지 분석해 보다 정확한 추산치를 내놓았다.


이 같은 ‘지식 나눔’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가 사진을 통해 촛불 밀도를 측정하는 ‘캔들카운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정보기술(IT) 업체 조이코퍼레이션은 와이파이 신호를 이용해 참여인원을 추산했다. 촛불 현장에서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고, 그만큼 역사의 한 페이지가 촘촘하게 기록됐다. 각계의 응집된 힘이 정권교체의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그때와 결이 다른 촛불 숫자 논란이 한창이다.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사태’가 급기야 시민들을 거리로 다시 뛰쳐나오게 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벌어진 집회 이후 조국 사태의 지형도가 격변하고 있다.

조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에 200만명이 참여했다는 주최 측 발표를 놓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양팔을 벌려 환영했다. 자유한국당은 ‘많아야 5만명’이라고 맞받아쳤다. 한쪽은 부풀리고 한쪽은 깎아내리며 서로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주고받는다. 어느새 조 장관 의혹, 검찰 개혁이라는 본질이 희석되고 ‘누구 촛불이 더 많으냐’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개천절인 3일에는 광화문에서 조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보수진영의 대대적인 집회가 열렸다. 선거철도 아닌데 시민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다.

문제는 2016년처럼 촛불의 힘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쪼개지면서 생기는 후유증이다. 집회인원 논쟁은 진영 대 진영의 세 싸움으로 변질됐다. 정부와 국회 안에서 해결해야 했던 일을 광장으로 몰고 간 무책임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촛불에 한껏 힘을 얻었다는 여당에도 한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현 정부가 임명한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되고, 이를 수사하는 정부 행정기관인 검찰이 과잉수사 논란을 빚고 있다. 그 검찰의 수장은 불과 몇 달 전 여당이 극찬하며 임명한 인물이다. 국정을 책임져온 집권 여당은 광장에 다시 모인 촛불 앞에서 이 모순된 상황을 대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사과부터 먼저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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