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개혁·개방을 한지 4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중국 핵심 정치 권력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신간 ‘중국의 엘리트 정치’는 중국 엘리트 정치의 정의부터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의 집권 시기 엘리트 정치의 특징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저자인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 공무원 및 학계 리더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확보한 정보를 통해 책의 신빙성을 높였다.
중국 최고의 엘리트 권력은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다. 중국에서 흔히 ‘중공 중앙’으로 불린다. 194명 가량인 중앙위원은 24명의 정치국원을 뽑고, 다시 정치국원들이 9명의 상무위원을 선출한다. 공식적인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은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9명의 상무위원이 정책 대부분을 결정한다. 특히 시진핑 국가 주석 시대에는 1인 지배체제가 정착되면서 나머지 상무위원들의 역할이 크게 줄었다.
저자는 마오쩌둥을 공산당 위에 군림하는 ‘사회주의 황제’로 규정했다. 그는 집권 초기인 1949~1958년에는 당 원로들과 협의해 주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1958년 단기간에 중공업화 이룩하자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이후 권위가 추락하자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마오쩌둥은 기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일인지배 체제를 확립했다. 그 결과는 대규모 숙청과 기아, 빈곤 등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문화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숙청됐던 원로들이 복귀했다. 덩샤오핑 시대를 맞아 중국 지도부는 마오쩌둥 시대의 교훈을 바탕으로 이른바 ‘8대 원로’라 불리는 혁명 원로와 합의 과정을 거치는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했다. 이는 덩샤오핑이 중국 국부인 마오쩌둥과 같은 압도적인 권위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후진타오 국가 주석, 시진핑 국가 주석 등의 집권 초기까지는 이같은 집단체제 체제가 이어졌다. 집단지도란 최고 지도자 개인이나 그가 이끄는 하나의 파벌이 아니라 여러 파벌이 정치 권력을 나눠 갖는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저자는 공산당의 제도화, 혁명 원로의 퇴진 등을 집단지도가 나타나게 된 배경으로 꼽는다. 또 장쩌민을 ‘권력의 화신’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후진타오는 극기와 절제가 몸에 밴 인물로 평가했다. 시진핑에 대해선 공산당 통제 강화, 개인 숭배 조장 등을 들어 장쩌민과 비슷한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3만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