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모델들이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코리아(BAT 코리아)의 차세대 전자담배 신제품 ‘글로 센스(glo™ sens)’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BAT 코리아
대학 시절 농촌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7월 말에 내가 속한 농활대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충남 서산의 한 농촌 마을로 향했다. 학생들은 조를 짜서 일부는 비닐하우스에 농약 치는 일을 하고, 다른 조는 마늘저장용 굴을 파는 작업을 맡았다. 어느 하나 힘들지 않은 일이 없었지만 누구나 걸리지 않았으면 했던 작업은 단연 담뱃잎 따기였다. 무더운 여름날 사람 키만큼 자란 담배 나무에 무성하게 자란 넓은 담뱃잎 아래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다 보면 후덥지근한 열기에 온몸은 금세 땀으로 젖었다. 담뱃잎은 까칠한 털이 나 있었고 끈적끈적한 진액이 배어 나와 하루의 작업이 끝나면 손이 따끔거렸다. 담뱃잎을 한 장씩 챙겨 와 장난삼아 숙소 빨랫줄에 말려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담배에 대한 인류사의 기록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됐다. 마야 문명권에서는 일찍이 담뱃잎을 태워 그 연기를 흡입하면 기묘한 각성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로부터 받은 물건 중 담배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담배는 ‘타바코’라는 이름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전해졌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담배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이른바 대항해시대, 즉 유럽인들이 적극적으로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던 시기였다. 특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믈라카해협을 통과한 후 필리핀과 일본 열도까지 도달했다. 담배는 유럽 선원들이 지나는 곳마다 자리 잡았다. 조선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쳐들어온 일본군을 통해 담배를 처음 접했다고 알려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7세기 초가 되자 담배는 조선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이렇듯 담배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빠른 속도로 세계 각지에 전파됐다.
하지만 해상 이동의 활성화는 배경이지 원인은 아니다. 담배는 이 무렵 전해진 여러 문물 가운데서도 유독 빠르게 여러 문화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은 담배가 강한 중독성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일단 한번 담배 맛을 보면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끊지 못하게 됐다. 담배의 중독성은 잘 알려졌다시피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성분 때문이다. 프랑스에 담배를 소개한 외교관인 장 니코(1530~1604)의 이름을 딴 니코틴이 뇌에 도달하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활성화한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여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대로 혈중 니코틴 농도가 떨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짜증을 내게 되는 등 금단현상이 나타나 지속해서 담배를 찾게 된다. 현대의 담배 회사들은 니코틴이 체내에 더 효과적으로 흡수될 수 있도록 각종 첨가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담배는 자연물이 아니라 엄연한 인공물이다.
현대의 말이식 담배가 인공물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는 필터다. 담배에 달린 필터를 뜯어보면 화학섬유의 일종인 얇은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막이 미세하게 주름 잡힌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담배 끝에서 발생한 연기가 필터의 조밀한 구조를 통과하면서 타르와 니코틴이 일부 걸러진다. 담배에 필터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부터였다. 흡연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조금이라도 그 악영향을 줄여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터 기술도 진화해 기존 필터에 참숯 성분을 포함한 필터를 이중으로 설계한 모델이 사용되기도 했다. 담배를 별도의 필터에 꽂아 피울 수 있게 해주는 장치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필터가 담배에서 발생하는 유해성분을 얼마나 걸러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필터는 흡연자의 입에 들어갔다 나오는 주류연(主流煙)은 걸러주지만 타고 있는 담배 끝에서 바로 공중으로 퍼지는 부류연(副流煙)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효과마저 미미한 이기적 테크놀로지인 셈이다.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금연구역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담배 필터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 시내를 다니다 보면 버려진 담배꽁초가 없는 거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많은 흡연자가 여전히 도로변 하수구 구멍에 꽁초를 버리곤 한다. 2019년 초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길거리 담배꽁초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 발표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매년 4조개의 꽁초가 버려진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담배꽁초가 하수도를 통해 강으로, 또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담배가 물에 녹으면서 나오는 진액이 물을 오염시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플라스틱 성분의 필터 부분은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물고기의 몸속에 쌓이고, 인간이 물고기를 먹으면서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인류가 지구 환경에 의미 있는 변화를 미치기 시작한 시점을 지칭하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담배꽁초는 인류세를 가르는 중요한 표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년 사이에 담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필자가 농촌활동을 떠났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생의 상당수가 담배를 피웠다. 군대에서는 비흡연자가 예외일 정도였다. 실내 흡연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교수가 있을 정도였다. 1995년에 국민건강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법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을 강제하기 시작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실내 금연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그 범위가 점차 늘어갔다. 이제는 버스정류장, 건물 출입구 부근, 주요 도로변에서도 흡연이 적발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전반적으로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특히 간접흡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담뱃갑에 경고 문구가 처음 들어간 것은 1976년의 일이었다.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온화한 표현이었다. 이제는 “폐암에 걸릴 확률 26배 상승,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섬뜩한 문구에 더해 적나라한 사진을 넣게 됐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발맞춰 테크놀로지 역시 진화하게 마련이다. 니코틴 중독을 단칼에 끊어내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금연보조제라는 이름으로 니코틴을 체내에 주입할 수 있도록 패치와 껌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흡연이 만족시켜주는 구순기(口脣期)적 쾌감을 모사하기 위한 금연초와 금연 파이프도 있다. 담배 연기 특유의 역한 냄새를 최소화하려는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전자담배도 성업 중이다. 그중에서 가열형 담배는 담뱃잎을 섭씨 800도가 넘는 고온으로 연소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300도 정도의 비교적 저온으로 가열해 성분을 뽑아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속속 등장해 한편으로는 담배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논쟁거리를 낳기도 한다.
20여년 전 서산 담배밭에서 따온 담뱃잎은 자연의 산물이었지만 그것 자체가 ‘담배’는 아니었다. 그것을 잘 말려 썰어낸다고 해서 우리가 아는 담배가 될 수는 없었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담배는 각종 첨가물을 넣어 니코틴 분자의 화학적 형태를 변화시키고 향을 입혀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설계된 상품이다. 그에 더해 수많은 공정을 통해 종이에 말고 플라스틱과 참숯 성분의 필터를 달아 흡연자에게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우리가 따온 담뱃잎은 농활 기간 내내 숙소 창가에 매달려 있다가 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쓰레기통 신세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