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비핵화 실무협상을 마친 후 북한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 AP·교도=연합뉴스
스웨덴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한이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변화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태도변화 요구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6일(현지시간) 스톡홀름 북미 실무 협상 뒤 중국 베이징을 통해 귀국하기에 앞서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환승 구역에서 “짧은 2주일 동안에 어떻게 세계적 관심에 부응하는 그런 새로운 셈법을 (미국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지 매우 의심된다”면서 단기간 내 협상 재개 가능성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이어 “판문점 수뇌 상봉(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 6월말 ‘판문점 회동’) 이후 지금까지 90여일이 지나갔다. 그동안에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미국 측이 새로운 셈법을 만들어 나오지 못했다”고 협상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위해 스웨덴에 온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 북한 대표단이 6일(현지시간) 숙소였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을 출발하고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김 대사는 전날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 이어 북미 실무협상을 역겨운 회담이라 힐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는 “우리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회담이 다시 진행되길 원치 않는다”며 미국 측이나 스웨덴 측과 2주 후 재협상에 대해 얘기한 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전날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고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협상의 판을 깰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대변인은 “미국이 우리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 인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기 실무협상 재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미국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면서 비핵화 실무협상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협상대표로 나선 김 대사가 전날 성명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 및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미군 유골송환 등을 일일이 나열한 점을 고려하면 북한은 미국의 상응 조치가 선행돼야 협상에 복귀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상응 조치 요구에도 미국 내에서 비핵화 전 제재해제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플러스 알파 또는 포괄적 로드맵 마련이 먼저라는 일괄타결식 빅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측은 포괄적 로드맵을 얘기했고 6·12 1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가지 조항에 따라 전향적 입장을 보였다. 동시적 단계적으로 가자고 한건데 북한이 완전히 거부한 것”이라며 “북한이 이런 입장을 고수하면 합의는 불가능해보인다”고 우려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5일 낮 12시30분 전날 실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SLBM이 발사되는 모습.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정치적 위기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북중 정상회담 개최나 추가 군사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은 북한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진 할 것이고 실무협상을 이런 식으로 몰고 갔다는 것은 북중정상회담 카드도 고려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는 거의 다 쓴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어떤 카드를 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신형 미사일 3종 세트와 함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도발을 한 만큼 무력시위 수위를 높일 것이란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윌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전문가들을 인용해 스톡홀름 협상 결렬은 화가 난 북한이 더 많은 무기 시험을 할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이 장거리·핵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며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여온 터에 실무협상 결렬을 추가 도발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아마 사거리를 조금 늘리는 1000에서 2500km사이 경계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미국에 대한 최대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은 2016년 2월 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의 대륙간탄도미사일급 광명성 4호 발사장면./연합뉴스
다만 북한도 새로운 길을 갈 경우 비핵화 협상 판이 완전 깨지기 때문에 ICBM 시험 등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박 교수는 “연말까지 합의 안 되고 협상 동력이 사라져도 북한이 ICBM 발사는 쉽게 못할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이번 실무협상에 모든 것을 걸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