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는 항상 언어, 문화 간의 차이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내밀하고 친밀하면서도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해’라는 한마디 말 대신 머리를 쓸어넘겨 주듯이 말이죠. 한국 독자들과도 충분히 교감하고 싶습니다.”
지난 5일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식에서 만난 미국의 시인이자 번역가 포레스트 갠더(63)는 한국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갠더는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한 편도 없는 ‘무명작가’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발표한 시집 ‘함께 하다(Be With)’로 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간 그의 수많은 작품이 여러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 이미 문학계에서는 유명인사다. 이번 방문도 국내 작가들의 추천으로 성사됐다.
‘함께 하다’는 갠더 아내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는 “아내를 잃고 1년 6개월 정도는 나 자신을 지탱하기도 힘이 들었다”면서 “처음 펜을 잡았을 때 억제됐던 감정들이 분출되면서 짧은 시간 동안 글을 써낼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함께 하다’라는 이름의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고 소개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자신의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차원을 넘어 이 시대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갠더는 “‘함께 하다’에서는 슬픔과 고통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다루고 싶었고, 또 그렇게 쓰였다”며 “나의 슬픔의 정도를 독자들이 이해한 것보다 각각의 독자들이 내면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 기뻤다”고 전했다.
‘함께 하다’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발표된 갠더의 대표작들은 여성을 주제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가 시를 처음 접한 것도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어려서부터 고전 시를 낭독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시를 쓰게 됐다고 한다. 갠더는 “내 시집에는 아내뿐만 아니라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에 대한 연민도 함께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학’을 주제로 한 글에서 ‘나는 여성들 속에서, 여성들의 손에 자랐다.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 식구들의 대화는 남성들의 심리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지는 방식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지속적으로 글쓰기와 연관시키는 은유들이지만 이 문제는 성별보다는 우리 가족과 더 관련된 문제일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 시인들의 작품성에도 주목했다. 그는 “최근 많이 읽은 한국 작품은 젊은 여성들의 시집인데 한국 여성 작가들의 글은 예쁘고 아름답기보다 강렬하고, 단단하고, 날카롭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며 “시는 특정 문화권의 시대적 목소리와 심리, 지성, 감성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한국 여성 작가들은 고유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의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윤리적(Ethical)’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작품을 설명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에 있어서 작가는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작품의 소재로 누군가를 잃게 되는 슬픔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슬픔을 글로 치장해서 지나치게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을 예로 들었다. 갠더는 “네루다의 여러 시는 군부독재 정권의 학살을 주제로 다루면서 어린아이들의 죽음과 같은 잔혹한 장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서 “그 참상은 다른 것과 비교할 필요없이 그 자체로 비극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윤리적인 선택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는 “시는 여백과 침묵이 많은 매체를 읽는 것이기 때문에 집중이 필요한 영적인 활동이다. 이런 여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를 통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갠더는 앞으로 일주일 남짓 진행되는 축제기간 중 한국의 여러 작가와 독자들을 만나 ‘시와 삶’ 등을 주제로 작품세계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