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태 광주고검 차장검사
지금 경남 사천의 한 병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초임 검사장 교육을 받던 중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결국 휴가를 내고 치료차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의사는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상태라고 한다. 몸은 주인의 의사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선언하고 말았다. 나는 남들보다 휴가를 훨씬 많이 저축해 두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못한 휴가가 창고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그럼에도 왜 아파서야 겨우 휴가를 내게 됐을까. 그건 온전히 내 탓이다.
휴가는 직장인들에게 긴 가뭄의 단비와 같이 복된 것이다. 그것은 공무원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있을 연휴나 개인적 휴가 계획을 희망으로 삼고 직장생활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직장인의 로망이기도 하고 법에도 정해져 있는 휴가를 그동안 스스로 선뜻 쓰지도 못했다. 또 휴가를 쓰겠다는 후배에게 흔쾌히 웃으며 보내주지도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후회도 된다.
일선에서 근무할 때로 기억된다. 중차대한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검사가 미리 계획된 가족과의 일정이라고 하면서 수사 진행 중에 휴가를 가겠다는 것을 수긍해주지 못했다. 다른 곳에 근무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이어 휴가를 가겠다는 검사의 휴가신청을 보고 나의 케케묵은 가치관이 다시 발동하고 말았다.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국민교육헌장 세대로서는 자율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대의 생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마도 기관장이라는 허울과 나이라는 장벽이 내가 그런 판단을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교육과 병 치료 때문에 본의 아니게 1주일가량 사무실을 비우게 됐다. 지금 검찰청의 업무는 내가 있을 때와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료는 내가 그동안 신경 많이 쓰이는 곳에서 일하면서 쉬지 못해 누적된 피로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검사들은 나처럼 이렇게 힘들게 지낸다.
검사로 일하면서 쉬는 것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고 살아왔다. 집에서도 소파에 드러눕는 것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 내 몸이 쉬고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무원은 국가재산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개인을 위해 쉬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요즘은 검찰에서도 기관장이 먼저 휴가를 간다. 그것이 시대에도 부합하고 업무 효율성에도 도움이 된다. 예전에 ‘나는 집에서 쉬는 것보다 사무실에 나오는 것이 훨씬 좋아’라고 말하곤 하던 선배들은 더 이상 후배검사들이나 직원들에게 호응받을 수 없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가끔씩은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더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나는 이번 주에 공무원으로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유연근무를 신청했다. 몸의 신호를 받고서야 비로소 휴식의 소중함을 아는 우를 범하고 있다. 쉬지 않으면 충전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사 실행하려고 한다. 필요할 때 원할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가끔씩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어쩌지. 직장인에게 휴가는 아무리 길어도 짧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