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오전 일본 인텍스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시진핑(앞줄 왼쪽 두번째)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해의 중국 국빈방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당시 외교가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방중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비난이 쏟아져나왔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중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근혜 정부 때 불거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싸늘해진 양국관계를 복원하려면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깨진 한중관계를 되돌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방중 과정에서 의전 등 중국 측의 외교 결례로 해석될 만한 일도 여러 번 벌어졌다. 물론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손을 잡은 결과 일단 사드 문제가 봉인되기는 했으나 한중관계는 여전히 정상궤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방중으로부터 22개월, 시 주석의 답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온갖 우려와 비난을 무릅쓰고 서둘렀지만 한중관계는 절반만 복원된 상태에서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어정쩡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간 경제전쟁이 터지면서 한국은 더 큰 어려움에 처했다. 지난 70년 동안 급부상한 중국과 이를 저지하는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순논리로 생존을 모색하기 어려운 처지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은 쉽게 끝나지 않을 미중 패권전쟁에서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현재의 동북아 및 글로벌 판세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형국이지만 우선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과 연대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21세기 들어 본격화된 ‘중국의 부상’이 동북아 세력 균형에 변화를 초래하고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기반한 동북아 질서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며 “미중 전략경쟁이 이미 현실화했고 또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돼 이에 대한 대응은 한국을 포함해 미중 간에 놓인 모든 지정학적 ‘낀 국가’ 또는 ‘중간국가’에 최대 외교정책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지정학적 충돌과 강대국 세력경쟁으로 고통받는 다수 중소·중간국가 및 중견국가와 연대를 구축해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강대국 세력경쟁의 와중에 완충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미중 경쟁을 거부하는 일본·호주·싱가포르·베트남·유럽연합(EU)과의 공동대응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원곤 한동대 지역관계학과 교수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이 대중 외교전략을 어떻게 세울지 하는 문제는 굉장히 어렵다”며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일본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일본·호주 등도 딜레마에 처해 있다”며 “기존 자유무역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의 규범·원칙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를 위해서는 현재 갈등이 첨예한 일본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중 갈등과 미중 경쟁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데 대한 철저한 반성과 새로운 외교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도 새로운 복합적인 외교·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외교안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장은 “우리가 그간 대중 외교를 너무 안이하게 했던 게 사실”이라며 “지나치게 북한·미국 중심이었고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소홀히 여겨 관계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은 오히려 중국·러시아의 ‘소외감’을 읽고 관계를 새롭게 구축했지만, 한국은 중국과 관계개선을 이루기는커녕 기존의 한미·한미일 관계가 약화하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 대중외교에 대한 전문가 투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봉근 교수는 “비전과 목표, 원칙과 가치가 없다면 역량을 결집할 수 없게 되고 상대방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반응하면서 목표 없이 표류하거나 상대에 휘둘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지역·공간·이슈 영역을 넘나드는 복합현안에 대응하려면 안보와 경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북한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복합 외교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영현·박우인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