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폴란드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고, 오스트리아선 '중세의 화려함'을…

■서로 다른 동유럽 수녀원·수도원

폴란드 크라쿠프 와기에브니키 자비의 성모 수녀원 성당. 중앙제대 옆에는 ‘하느님의 자비 상본’이 걸려 있다. 그 아래에는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무덤이 있다.

엘쉬비에타 시에파크(왼쪽) 홍보 담당 수녀가 지난달 23일 폴란드 크라쿠프 와기에브니키 자비의 성모 수녀원 내에서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의 초상 앞에 서서 한국어 번역판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자비 일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동유럽에서 수도원과 수녀원은 신앙을 통해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 플레이스’이자 학문의 전당이었다. 2차 세계대전, 구소련의 지배 등을 겪으며 동유럽의 가톨릭 문화는 나라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신앙심이 가장 충만했던 폴란드에서는 수도원과 수녀원이 여전한 신심의 산실로, 전통적인 역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학문의 전당, 영성 프로그램, 와이너리, 박물관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꾀하며 그 기능을 확장하고 있었다.

☞信心 산실 ‘자비의 성모…’ 수녀원

오후3시 ‘하느님…기도’ 세계로 전파

성녀 ‘파우스티나’가 잠들어 있는 곳



◇자비와 신심의 산실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원’=지난달 23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동유럽 가톨릭문화유산 순례단과 폴란드 크라쿠프 와기에브니키에 위치한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원’을 방문했다. ‘하느님 자비의 사도’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1905~1938) 수녀가 생활하고 선종한 곳이다. 파우스티나는 환시로 예수의 메시지인 ‘하느님의 자비’를 접하고 이를 세상에 전파했다. 그가 환시로 만난 예수는 맨발로 추위에 떨고 있었으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받은 후에 “내가 맨발로 와서 따뜻함을 느꼈듯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이 따뜻함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녀원의 성당 안에는 심장에서 광채를 내뿜는 예수를 그린 ‘하느님의 자비 상본’이 걸려 있다. 1931년 2월22일 파우스티나에게 나타난 환시를 그림으로 옮겼다. 홍보 담당인

하느님의 자비 신학서를 다수 집필한 엘쉬비에타 시에파크 수녀는 “2차 세계대전 때 고통받던 폴란드인들이 찾아와 기도하면서 수녀원은 ‘자비의 신심’을 전파하는 성지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이 수녀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오후3시에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바친다. 파우스티나에 대해 설명하던 시에파크 수녀 역시 오후3시가 임박하자 기도시간이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세계 곳곳에서 3시에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스트리밍하는데 필리핀에서 가장 청취율이 가장 높다”고 전했다. 전 세계에서 오후3시가 되면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의 무한한 힘과 확장성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폴란드를 통해 들어온 국제 선교회 팔로티가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파하고 있다. 예수가 전한 말을 파우스티나 성녀가 직접 기록한 일기인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자비 일기’는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멜크 수도원.

소설 ‘장미의 이름’에 영감을 준 멜크 수도원 도서관.

☞보물궁전 ‘멜크·클로스터…’ 수도원

왕가 물품·성물에 수만권의 필사본

박물관·영성 프로 등 시대맞게 진화



◇‘장미의 이름’ 영감 준 멜크 수도원=이탈리아 출신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성 베네딕토회 멜크 수도원을 찾은 것은 지난달 25일이었다. 멜크는 빈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도나우강과 멜크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언덕에서 유럽 최대의 바로크식 건물다운 위용을 드러낸다. 수도원은 1089년 바벤베르크 왕가의 레오폴트 2세가 자신의 성 가운데 하나를 베네딕토회에 기증해 설립됐다. 1,000년에 가까운 역사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멜크 수도원 도서관은 방대한 필사본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12개 실로 구성된 도서관이 10만권으로 빼곡하다. 이 중 필사본 2,000권을 포함해 1만6,000권가량은 박물관 장서실에서 읽을 수도 있다. ‘장미의 이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도원은 에코의 소설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한다. 수도원 문화관광 담당 마르틴 로테네더 신부는 “‘장미의 이름’에서 거론된 금서가 실제로 있었다면 흥미진진했을 것”이라며 “에코가 수도원을 몇 번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눴다. ‘장미의 이름’은 그저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전했다.

지금도 멜크 수도원은 중세 학문의 중심지다. 1160년 이곳에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사립 중등학교인 ‘멜크 수도원 김나지움’이 설립됐다. 현재도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온 900여명이 재학 중이다. 다른 사립학교와 달리 학비가 매달 85유로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경제력을 따지지 않고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다. 모든 이에게 수도원을 개방한다는 의미로 영성 수련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로테네더 신부는 “수도원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고 가능한 한 수도원 내 많은 방의 문을 연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며 “모든 인간이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수도원에 직접 와서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프로그램에 최고경영자(CEO) 등 수련 희망자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지원자가 너무 많은 게 고민이 됐다”고 덧붙였다. 시대에 따라 도서관, 학교, 신앙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 오히려 멜크가 1,000년이라는 역사를 지켜온 힘이 아닐까. 수도원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내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박물관 소장품.

◇시대에 발맞추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아우구스티노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빈에서 북쪽으로 15㎞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을 찾은 날은 방문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데다 외딴곳에 위치해 웅장한 규모가 오히려 ‘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수도원 내부에 발을 디디는 순간, 찬란했던 오스트리아 왕가의 기품과 사치스러울 정도로 호화로운 인테리어·소장품으로 순식간에 영화 세트장 혹은 ‘보물 궁전’에 도착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기에 외교가 발달한 오스트리아의 ‘환대의 문화’가 푸짐한 다과로 순례단을 맞았다.

멜크와 마찬가지로 이곳 수도원 도서관도 1,200개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박물관이 소장한 예술품이다. 왕가가 사용했던 화려한 옷·장신구·식기 등을 비롯해 금세공으로는 오스트리아에서 최고이자 최대인 베르둔 제단 등 고가의 성물과 현대미술 작품이 4만점에 달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고가의 예술품을 보유하는 것이 종교와 무슨 관련 있을까. 볼프강 후버 큐레이터는 수도원이 보유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사지가 잘려 몸통만 남은 아이와 부르카(무슬림 여성들의 전통복장)를 두른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구매 리스트에 올렸을 때 찬반이 대립이 굉장했다”면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종교가 가져온 전쟁의 고통과 비극을 절절히 느끼게 될 것이니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며 종교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했다.

수도원은 이처럼 시대에 맞춰 종교의 의미를 다각도로 질문하고 때로는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동참을 유도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에는 피우스 파르쉬 수사가 전례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또 제대 방향을 신자들을 향하게 하고 전례에서 라틴어 대신 각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해 대중 전례 운동에 앞장섰다. 이곳은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는가 하면 수입의 10%(연간 100만유로) 이상을 사회사업에 쏟아붓고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성 레오폴드 평화상’을 공모해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글·사진(폴란드·오스트리아)=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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