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5년 해묵은 과제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 제고 방안을 내놓았다. 상근 전문위원 제도를 통해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정부의 입김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기금운용위원회 의사결정 구조에는 변화가 없어 결국 허울뿐인 ‘운용 독립’ 개선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운영 개선방안을 담은 국민연금법 시행령 및 관련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의 핵심은 상근 전문위원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 상설기구에 상주하면서 투자정책·수탁자책임·성과보상 등 산하 3개 전문위원회를 이끌게 된다. 금융·경제·자산운용 등의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 있는 민간 전문가가 자격 요건으로 임기는 3년(연임 1회 가능)이다.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 등 각 가입자단체의 추천을 받아 1명씩, 총 3명을 임명할 계획이다.
상근 전문위원의 활동을 지원할 상설기구도 만들어진다. 상근 전문위원과 지원인력은 독립성 보장을 위해 민간인 신분 역시 유지된다.
문제는 이 같은 방안이 국민연금의 ‘운용 독립’에는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20명의 기금운용위 위원 중에서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당연직 위원이 5명에 달한다. 국책연구원장을 더하면 정부 표(票)만 8개나 된다. 그만큼 정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정부에서 국민연금을 정책에 동원하거나 의사결정을 쥐고 흔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3년부터 17차례나 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시행령 개정이라는 차선책을 택했지만 결국 허울뿐인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개선안으로 정부의 입김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복지부는 기금운융위 위원 3분의1 이상이 동의한 안건은 위원회에 공식 부의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3분의1 이상이 동의하는 안건은 회의소집을 통해 논의한 뒤 안건을 상정하는 절차를 거쳤다. 역으로 정부로 무게추가 쏠려 있는 의사결정 구조에서 정부의 입맛대로 기금운용의 방향을 틀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정부는 물론 전문위원 제도를 통해 최대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독립성이나 객관성 등 국민의 우려가 많지만 그나마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이 전문위원회를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