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LNG 운반선의 모습./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최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을 불허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은 산업계 구조조정의 최대 현안입니다. 최근 수년간 불황과 경쟁력 약화로 고심하던 두 회사가 합병을 통해 반등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지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일본·유럽연합(EU)·중국·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6개국의 경쟁당국에 기업 결합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글로벌 1·2위 회사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면 단숨에 세계 시장의 21% 이상을 장악하는 거대 기업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두 회사의 기업 결합은 선박 발주량이 많은 해외 국가들에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회사 노조의 반발만 잘 설득하면 될 것만 같았던 기업 합병 앞에 의외의 난관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이어지고 있는 한일 갈등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극렬 우파가 내각을 장악한 가운데 일본이 정치적 이유를 빌미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반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서울경제 기자와 만나 “일본 경쟁당국이 정교하고 합당한 논리 없이 악화하는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둔 채 두 회사의 결합을 불허하면 국제 사회와 세계 무역시장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일본이 국가적 신용에 ‘리스크’를 입는 상황까지 감수하면서 무리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바람이 담긴 발언이지요. 그런데 이 관계자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일본의 공정취인위원회가 반대하면 두 회사의 인수합병(M&A)이 사실상 힘들어질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전경. /서울경제DB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기업 결합의 주체인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일본이 반대하더라도 합병 허락을 받은 다른 나라에서 영업 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대국일 뿐 아니라 세계 선박 발주량 ‘톱(Top) 3’에 드는 일본의 경쟁당국이 합병을 승인하지 않으면 두 회사로서도 기업 결합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일본이 기업 결합을 불허하는 상황은 가정하지 않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습니다. 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도 최근 ‘조선 해양의 날’ 행사에 참석해 “지난 9월 초 일본의 경쟁당국과 상담 수속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부정적인 반응이나 우려는 없는 상황”이라며 “연말까지 기업 결합 심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업을 제외하는 ‘조건부 승인’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하지만 핵심 사업인 LNG선을 빼면 기업 결합의 시너지가 크게 약화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 경우에도 두 회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의 반대는 합병 심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상부기관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간부들과 함께 벨기에 브뤼셀로 건너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과 면담하면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허해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국제 M&A 시장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해도 영향은 거의 없다”며 “법적 문제가 없으면 승인 절차도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아무쪼록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곳곳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고 합병을 통해 다시 한 번 글로벌 무대에 한국 조선의 역량을 입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