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의 히어로들 중에서 호크아이는 유독 분량이 작습니다. 활도 잘 쏘고 반사 신경도 뛰어난 히어로인데도 불구하고 호크아이가 어벤져스에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영화 속에도 종종 나왔지만, 그는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호크아이의 분량 문제는 우리 한국 사회의 인구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호크아이가 어벤져스에서 종종 모습을 감추는 이유는 우리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 또 결혼을 꺼리는 이유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낳지 않는 한국… 합계출산율 0%로 진입한 한국의 이야기
최근 한국의 지난해 출산율이 발표돼 충격을 줬습니다. 합계출산율이 0퍼센트 대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10년간 우리나라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런 노력을 코웃음 치듯 출산율은 고꾸라졌습니다. 저출산의 원인에는 우리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미혼인구(20~44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남성은 50.5%, 여성은 28.8%에 불과했습니다. 또 미혼여성의 48%, 미혼 남성의 28.9%가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 변화가 혼인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의 혼인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결혼하는 건수는 5건에 불과했는데 이는 1970년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저치입니다.
■선진국 중 두 번째로 긴 근로시간…일·가정 양립 어려운 한국 사회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호크아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호크아이 역시 어벤져스 히어로 일에 집중하면 가정에 소홀하게 되고 다시 가정에 집중하기 위해선 어벤져스를 그만두곤 했죠. 우리나라의 청년들 역시 호크아이처럼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물론 호크아이는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 일을 하니까 일·가정 양립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한국인들이 하는 일은 세계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울까요? 그건 지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입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멕시코 다음으로 긴 시간입니다. OECD 평균과 비교하면 1년에 35일 더 일하는 셈입니다. 당연히 가정을 돌볼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죠. 2018년 기혼여성 취업자에 관한 조사를 보면 37.5%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결혼이나 임신·출산이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 11개월 만에 취업해도 월급은 200만 원…결혼 포기하는 요즘 청년들
요즘은 이 같은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이야기가 사치인 경우도 많습니다. 양립할 일과 가정을 모두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결혼을 결심할 때는 생애 전체에 대한 전망을 고려합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 삶에 대한 기대치도 결혼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죠.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아, 그래도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생활은 할 수 있어야 가정을 꾸리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수준’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갖췄을 때 결혼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수준’을 갖추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지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취업준비생은 71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수년째 이어지는 고용 한파 탓에 청년(15~29세)들이 졸업 후 첫 직장을 구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11개월 소요된다고 합니다. 이 같은 고용 한파를 뚫고 어렵게 취직해도 10명 중 8명은 2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습니다. 월 200만 원을 벌어서 언제 결혼하고, 애 낳고, 집까지 살 수 있을까요. 신한은행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월 285만원 버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21년이 걸립니다. 이러니 대부분 결혼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까진 해도 아이는 NO… “아이 낳으면 불행해진다”는 젊은 부부들
이런 불황 속에서 결혼까진 하더라도 아이는 포기하는 젊은 부부들도 대폭 늘었습니다. 2019년 한 조사에서 미혼 인구(20~44세)는 자녀가 없어도 무관한 이유로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 등을 꼽았습니다. 미혼뿐만 아니라 기혼 무자녀 인구의 출산의향 역시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2018년 기혼 무자녀 인구의 ‘출산 의향이 높다’ 응답은 미혼 인구보다 오히려 낮았습니다. 이유로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어서, △자녀 양육비 부담이 커서 등이 주를 이뤘습니다.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와 관계 깊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었다고 하지만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맞벌이 가구 중 한 명의 수입이 양육 때문에 끊기게 된다면 당연히 수입은 반 토막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계속 하더라도 돌보미 등을 고용하는 데 드는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큽니다. 최근 정부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무상 보육을 확대하고 있긴 하지만 육아에 이어지는 교육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통계상으론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교육비가 기존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는데,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돌봄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소득 5분위, 그러니까 상위 20%를 기준으로 자녀가 미취학 아동일 때에는 월평균 57만 원이었던 교육비가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월 97만 원으로 급증합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돌봄이 필요 없게 되는 중·고등학생이 되면 경제적 부담이 완화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이 좋은 일자리, 나아가 좋은 삶을 보장해준다고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녀 교육에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교육비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늘어납니다. 많은 젊은 부부들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결국 한국의 저출산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나타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용부터 육아, 교육, 부동산까지 모든 것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죠. 결국 사회 경제적 여건이 모두 갖춰져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저출산 5개년 계획을 수정하면서 지금까지 출생아 수나 출산율이라는 숫자 자체에 집중했던 저출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가시적인 변화는 어렵겠지만, ‘전국 가임기 지도’ 같은 황당한 저출산 정책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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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90년대생 왜그러냐고?’ X세대와 비교해봤다 (밀레니얼에 대하여)
3편: ‘장수국 or 노인국?’ 한국이 전세계서 가장 빨리 늙는 이유(고령화 원인·해법 총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