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게임 규칙을 바꾼다. 헌법과 선거 시스템,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이런 시도는 공공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모든 제도를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최근 출간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의 속살을 묘사했다. 외국 사례를 해부한 것이지만 문재인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특히 제1야당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매달리는 속내에 주목하게 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면서 “공수처를 뺀 검찰 개혁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권이 하산길 진입을 앞두고 공수처법 처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는 절박한 사연이 있다.
첫째, ‘조국 구하기’의 포석이다. 여권은 공수처를 출범시키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과 관련된 검찰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 등이 제출한 공수처법 24조에는 ‘공수처장이 수사의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검경이 수사하던 사건이 일단 공수처로 넘어가면 ‘송곳 수사’는 불가능하다. 여권이 주도하는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추천한 2명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친여(親與) 인사로서 권력에 종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둘째, ‘문재인 정권 보호법’이 될 수 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의 수사는 검찰 특수부가 아닌 공수처가 맡는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있더라도 현 정권뿐 아니라 차기 정권에서도 철저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 정권이 주도하는 공수처의 검사와 수사관은 대부분 민변(民辯) 출신 등 정권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 검사는 3년 임기에 3회 연임, 수사관은 6년 임기에 연임이 가능하므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검사·수사관 물갈이가 쉽지 않다.
셋째, ‘정적 탄압법’이 될 우려가 있다. 공수처가 신설될 경우 야당 인사들과 검사·판사·경찰이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공수처와 유사한 해외 수사기관들도 불법적으로 정부 비판 인사를 탄압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넷째, 공수처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권력’이 될 수 있다. 다른 사정기관의 견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정보수집권, 수사권과 판사·검사·경찰에 대한 기소권과 수사이첩 요청권까지 갖게 되므로 나치 정권의 정치경찰이었던 게슈타포 같은 괴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섯째, 공수처와 유사한 기구를 가진 나라들은 장기집권 국가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공수처법은 유사 모델로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와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을 들었다. 중국도 유사한 기구를 만들었다. 여섯째, 위헌 소지도 거론된다. 한 법학자는 “헌법 12조에 검사의 영장신청권이 규정돼 있는데 공수처 검사를 따로 임명해 일반 검사처럼 영장신청권과 기소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검찰 개혁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및 정치적 중립성, 인권 보호 등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가능하다. 인권을 소홀히 했던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은 즉각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공수처는 독립성 및 중립성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되레 공수처법은 ‘살아 있는 권력 보호법’이고 ‘정권 비판세력 탄압법’이라고 꼬집는 얘기가 나온다. 공수처를 설치하면 가짜 검찰 개혁이 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정권의 충신들이 검찰 등 사정기관을 장악할 경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수사와 고발을 차단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kd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