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최악시나리오 일단 피해...英의회 문턱 넘을지는 불투명

북아일랜드 英관세영역 머물되 EU규정 제한적 적용키로
양측 비준절차 끝나면 3년4개월 끌어온 혼전에 마침표
야당은 물론 연립 DUP도 반대...의회 과반확보 장담못해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합의 초안에 합의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브뤼셀에서 EU 각국 정상들은 합의안에 대한 추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브뤼셀=로이터연합뉴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17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EU 정상회의 직전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합의안에 전격 합의하면서 이달 31일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는 일단 막을 수 있게 됐다. 다만 합의안이 EU 정상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유럽의회와 영국의회가 이를 비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해 변수는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는 EU 행정부 수반 격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줄다리기 끝에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EU 각국 정상들은 합의안에 대한 추인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 합의안에 대해 영국의회와 유럽의회에서 비준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히는 등 EU 정상들은 일제히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유럽의회와 영국의회 비준까지 모두 거칠 경우 영국은 예정대로 31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 EU를 떠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3년 4개월 만에 EU 탈퇴를 마무리 짓게 된다.

앞서 영국과 EU는 수주에 걸쳐 브렉시트 협상을 벌여왔지만 합의안의 핵심 쟁점인 ‘안전장치(백스톱·backstop)’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안전장치’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에서 ‘하드 보더(Hard Border, 국경 통과 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브렉시트 전환(이행) 기간 내에 양측이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당분간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남도록 하는 내용이다.


존슨 총리는 ‘안전장치’의 대안으로 ‘4년간 두 개의 국경(북아일랜드가 EU 관세동맹에서는 탈퇴하되 농식품·상품은 오는 2025년까지 EU 단일시장 규제를 적용받는 것)’을 뼈대로 하는 대안을 2일 EU에 전달했지만 EU 측의 거부로 다시 북아일랜드에 ‘두 개의 관세체계’를 동시에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북아일랜드는 법적으로는 영국 관세체제의 적용을 받지만 현실적으로는 향후 4년간 계속 EU 관세동맹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존슨 총리는 북아일랜드가 4년마다 스스로 잔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에 대해 EU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통행·통관 선을 긋지 않는 대신 아일랜드해에 관세 국경을 세우자고 역제안했다.

이처럼 첨예한 북아일랜드 문제가 이날 나온 합의 초안에 어떻게 담겼는지를 두고 관심이 쏠렸다. BBC에 따르면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북아일랜드가 EU의 상품 규제를 따른다는 원칙을 초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 사이에 ‘규제 국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만 북아일랜드는 계속해서 EU 단일시장에 진입하는 ‘입구’ 역할을 하도록 하는 원칙도 초안에 담겼다. 이에 따라 영국 당국은 북아일랜드로 수입되는 제3국 상품 중 EU 단일시장에 유입될 위험이 없는 경우에는 영국의 관세율을 적용하게 되지만 상품이 EU 단일시장으로 건너갈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EU 관세체계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이날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합의안 타결로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는 일단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합의 타결 소식이 전해진 뒤 이날 영국 파운드화는 한때 1.2990달러로 1% 이상 치솟으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로 “적어도 기업가들이나 여행자들이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영국 집권 보수당의 연립정부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이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해법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브렉시트가 예정대로 31일 이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DUP는 이날 합의 이후 성명을 통해 “합의 초안이 북아일랜드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제1야당인 노동당,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자유민주당도 일제히 이번 합의안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존슨 총리가 마련한 합의안이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만들었던 것보다 더 나쁘다”고 혹평했다.

이에 따라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추인되더라도 영국 의회에서 부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당은 의석수가 288석으로 하원(650석) 과반에 못 미치는 만큼 10석을 확보한 DUP 외에 추가적인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새 브렉시트 합의안 초안은 오는 19일 영국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만약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존슨 총리는 의회를 통과한 법률에 따라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31일로 3개월 추가 연기해야 한다. BBC는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더라도 이를 거절해달라고 EU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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