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오사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일왕 즉위식 참석차 일본을 찾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통해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친서를 보낼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일관계 복원의 계기가 마련될 지 관심을 끈다.
허심탄회한 정상 간 소통의 상징 ‘친서 외교’
친서 외교는 정상 간 친서는 공식적인 외교문서는 아니지만 국가의 수반이 타국 정상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보증할 서명을 한다는 점에서 조약에 준할 만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점에 주목된다. 특히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고 상대방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가에서는 갈등관계에 있는 양국 정상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친서 외교를 활용한 사례도 많다. 실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핵 합의를 위해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친서를 보낸 바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북미 비핵화 협상의 고비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난국을 타개한 바 있다.
18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식 참석차 다음 주 일본을 방문하는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는 것이 좋겠지요’라고 이야기해서 자신이 ‘네 써주십시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9월 11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일 양자회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연합뉴스
이 총리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본 방문과 관련해 “두 명의 최고 지도자(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역사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한일 현안을) 해결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며 “두 사람 재직 중에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 대통령도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심부름꾼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이 총리는 징용 배상을 둘러싼 소송을 놓고 양국이 대립하는 것에 관해 “지금 상태는 안타깝다. 양국은 비공개 대화도 하고 있다. 쌍방의 지도자가 후원하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중에 경과가 공개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유리그릇처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정상회담 관건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법
이 총리는 이날 보도된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문 대통령이 징용 문제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외교 당국의 협의는 이어지고 있으며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 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 구체적인 현안보다 양국 정상회담 제안 등 큰 틀에서 한일 간 소통을 강조하는 문구가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양국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거론해왔다.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조치인 만큼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해결되면 얽힌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 아사히 신문은 이 총리가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징용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으며 한국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는 대책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해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도의적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에 나서는 1+1+‘α’가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된다.
주목되는 아세안+3정상회의와 APEC정상회의
문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아베 총리가 긍정적인 답신을 보낼 경우 양국은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태국에서 개최되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나 다음 달 16~17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일갈등 문제가 양국 정상의 정치적 명운을 건 이슈로 커진 만큼 천시 외교가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만만찮다.
한국 내 반일정서를 고려할 때 내년 총선을 앞둔 문 대통령도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 양보가 쉽지 않고, 아베 총리 역시 정치적 숙원인 평화헌법(전력 보유 금지 및 교전 불승인) 개정을 위해 한일갈등 상황이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이 17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위해 본전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일본의 패전일과 예대제에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7년 4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이후 2년 반 만이다. /도쿄·교도=연합뉴스
실제 전날에는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정부 현직 각료가 패전일이나 예대제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2년 반만의 일로 아베 내각의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에토 담당상에 이어 이날도 일본 여야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내 반일정서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