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시위가 일어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18일(현지시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베이루트=AP연합뉴스
레바논에서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왓츠앱’ 이용에 수수료를 부과하려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반정부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자말 알-자라흐 레바논 정보정관이 이날 각료회의 직후 내년부터 왓츠앱 등 메신저프로그램 이용자에게 하루 20센트, 한 달 6달러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성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타이어를 불태우고, 상점 간판 등을 부수는가 하면 진압 경찰에 플라스틱병을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정부의 새로운 세금 징수 계획에 불만을 표출했다.
레바논 정부가 왓츠앱 등에 이용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은 세수 증대를 위한 것이다. 역내에서 평균 휴대전화 이용료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레바논에서는 이용자들이 왓츠앱 등 메신저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린 여파로 지난해 국영통신사 2곳의 수입이 약 33%까지 급감했다. 레바논 통신 시장은 국영통신사 2곳이 과점하고 있다.
수도 베이루트 시내를 점거한 시위대는 이날 “정부는 물러가라”, “우리는 혁명을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경제 실정과 부패한 관료들을 비난했다. 소규모로 시작됐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진 시위대는 “우리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물러나길 원한다”며 사드 하리리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사퇴를 촉구했다. 압둘라라는 이름의 시민은 로이터에 “우리는 비단 왓츠앱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연료, 식품, 빵과 같은 모든 것이 문제”라며 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실정이 이번 시위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베이루트의 정부 청사 인근에서는 정부 청사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을 쏴 저지하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레바논 적십자사는 경찰의 최루탄 발포로 호흡 곤란을 겪는 시위대 22명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경상을 입은 77명을 치료했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보안군 40명도 시위대와 대치 과정에서 부상했다면서 평화 시위를 촉구했다.
시위가 격화하자 정부는 이날 늦게 왓츠앱 등에 이용료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으나 레바논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밤늦게까지 베이루트 거리 곳곳에서 격렬하게 이어진 시위는 18일 날이 밝은 뒤까지 지속됐다. 이날 아침에도 시위대 수천 명이 정부 청사 인근에 모여 구호를 외치면서 경제난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당국을 성토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달 29일에도 경제 위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펼쳐진 바 있다.
최근 레바논은 대규모 부채와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심각한 경제 문제에 직면했다. 레바논의 국가 부채는 860억 달러(약 103조원)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금융 지원의 대가로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긴축 압박을 받고 있는 레바논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내후년 2%, 2022년에 추가로 2% 더 올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