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흐름 속에 꾸준히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출판사 꿈꾼문고는 이달에만 ‘몸 페미니즘을 향해:무한히 변화하는 몸’과 ‘페멘 선언’을 동시에 출간했다. 이 출판사의 ‘ff(fine books ×feminism) 시리즈’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책이다. ‘ff 시리즈’는 부조리한 성차별과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도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대안을 제시하는 선언, 연설, 이론, 문학 등을 소개하는 기획이다.
‘몸 페미니즘을 향해’는 남성의 몸에 비해 ‘부재’하고 ‘결핍’된 몸으로 정의됐던 여성의 몸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플라톤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은 ‘몸(육체)와 마음(정신)의 이원’이라는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을 고수했다. 이러한 가운데 남성에 비해 ‘결핍된’ 몸을 가진 여성은 불확실하고 열등한 존재이며, 철학적으로 다룰만한 대상이 아닌 것으로 치부됐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관점을 비판한다. 여성의 몸을 ‘부재’나 ‘결핍’의 존재가 아닌 ‘성차’로써 정의하면서 여성 몸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분석한다. 기존의 남근중심적 체계 대신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 개념으로서 ‘성차화된 몸’을 제시했다. 저자는 플라톤, 데카르트를 비롯해 라캉,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 등 서양 철학부터 정신분석학, 의학 등의 방대한 자료를 논거 자료로 삼았다. 1만8,500원.
‘페멘 선언’은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창설된 페미니즘 저항 단체인 페멘의 이야기다. 섹스 관광을 비롯해 성 산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한 페미니즘 단체인 페멘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벌거벗은 가슴을 드러내 그 위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슬로건을 적는 ‘기습 반라 시위’를 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반라 시위’는 여성의 육체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자 투쟁하는 몸의 상징이다. 책에는 창립 이후 페멘의 역사가 정리됐으며, 독재, 종교, 성 산업이라는 투쟁 대상에 ‘대리모 출산’ 등의 새로운 페미니즘 이슈를 추가했다. 2015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의 번역서다. 1만1,500원.
앞선 두 서적이 여성이 어떻게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돼 왔는지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으로 접근했다면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는 그동안 여성들이 이뤄낸 성과에 주목했다. 동시에 페미니즘이 오히려 최근에는 또 다른 권력이 됐으나 여전히 폐쇄적이고 부정적이며 ‘낡은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투쟁해온 결과 이미 현재 여성들은 할머니 세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유와 다양한 기회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통계상으로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뛰어나고, 대학 진학률도 높으며 그 결과 여성들이 최상류층에 속하는 일자리를 더 많이 얻게 됐고 성별 임금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과 영국의 통계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에 곧장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남성을 태생적으로 악마와 파괴자로 간주해 여성들에게 지나친 피해의식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피해의식이 되레 여성의 지위를 더욱 격하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지만,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단면을 확대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다만 여성과 남성이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과 남성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1만7,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