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북부 철수를 계기로 미국이 중동에서 아예 손을 떼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리아 문제는 미국의 중동 철수의 중요한 순간”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고립주의로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뚜렷이 드러나는 게 시리아 사태라는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일에 아예 개입되는 것 자체를 꺼립니다.
관심은 동북아입니다. 북핵 문제와 미중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에서 앞으로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예상을 일찌감치 내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책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를 쓴 지정학자 피터 자이한이죠. 그의 신간 ‘분열된 국가들(Disunited Nations)’이 내년 3월에 나오는데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전망은 전망에 불과하지만 이를 곱씹어 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 개인의 분석에 불과하지만 미·중·일에 둘러 쌓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분석이 날카롭다면 더 그렇습니다.
美, 韓에 수십년 간 지원…“이제는 돌려받을 때”
본격적인 미래 전망 전에 우리나라의 위치와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워싱턴의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자이한은 새 책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심지어 한국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군이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를 막아주고 북한의 두드러진 위협에서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텐데 최소한 미국의 시각이 이렇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꼭 트럼프 대통령이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같은 생각은 오래됐습니다.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홍콩을 겨냥해 섬유협정을 요구했습니다. 섬유수출을 줄이라는 것인데 지금의 무역협정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섬유수출로 먹고 살았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사형선고 같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978년 한국 정부의 대미 로비사건을 다룬 미 하원의 프레이저보고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남한은 자국의 경제 잠재력을 제한하려는 시도이자 오랫동안 유지돼온 특별한 관계를 깨려는 사건으로 봤던 반면 미국은 그것을 수십년 동안 지원해왔던 우방에 대한 최초의 요구로 봤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워싱턴에서는 미군 덕분에 한국이 안보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발전에 성공했다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과거 자료지만 주한미군의 장비 가치만 10~20조원대이고 심리적 안정 같은 효과를 더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집니다. 단순히 트럼프가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피터 자이한
주둔비·무역협상은 끝 아닌 시작…美 요구 갈수록 커질 것
앞으로 미국의 요구는 갈수록 많아진다는 게 자이한의 판단입니다. 시리아와 중동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이 점차 세계에서 손을 떼고 있기 때문이죠.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석유가 필요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시설 피격 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석유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동맹을 돕겠다”며 사우디에 시혜를 베푸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미군 주둔을 요구하거나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역이나 주둔비 어떤 것이든 미국인과 거래를 하는 것은 협상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이다. 미국인들은 더 나은 시장접근을 얻는 것 이외에 더 이상 글로벌한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 (국제전략으로) 미국이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계속 이를 들어줘야 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노골적으로 방위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의 추가구매를 틈날 때마다 언급하고 있죠.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청구서는 갈수록 금액이 커집니다. 미국 내에서도 동맹을 돈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많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우리나라에 좀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고민이 있는 것이죠.
독도방어훈련을 하고 있는 해병대원들. /독도=연합뉴스
中·日에 모두 뒤지는 군사력…양자택일 해야 한다면?
자이한은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어느 곳과 맞붙어도 군사적으로는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정학자인 그가 중요시 하는 것은 해군입니다. 한국은 석유와 LNG 등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해양루트를 보호해주고 있어 모든 나라가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지만 미국이 이같은 임무에서 손을 떼면 원양해군이 없는 한국은 중동이나 미주 대륙에서 에너지원을 들여올 수 없습니다. 에너지원은 산업의 생명선인데 그것이 끊기는 것이죠. 자이한은 “중국과 일본 어느 나라든 유사 시 한국 해군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중국의 부상이 무서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봉쇄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해와 남해 일원을 일본 해군이 장악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이고 외교지만 국가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합니다.
자이한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불쾌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의 선택은 일본입니다. 중국은 경제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있어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만의 생각은 아닌데 월가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석유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인데 석유 수입 때 필요한 게 달러입니다. 기축통화인 달러 없이는 중국도 경제의 기본 틀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원정 해군이 있어 상대적으로 미래가 밝습니다.
계속해서 요구가 많아지는 미국과 역사적으로 얽혀있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를 택해야 할까요. 외교관으로 40년을 일한 조태열 주유엔대표부 대사는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며 “일본과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 북핵 문제보다 더 어려운 지뢰밭”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할수록 갑갑합니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수록 내부적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국익이 달린 외교안보 정책부터 한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