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민생이다]수출이 살아야 경제도 활력...정부, 日규제 출구전략 내놔야

<상>수출기업 활로 열어라
대체소재 국산화 속도 낸다지만
기업들 테스트 비용 등 부담 커
정부, 규제 풀고 자금지원 필요
美中 무역분쟁 피해도 급증
추가관세 대책 마련 등 시급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소재를 투입했을 때 검증용 라인 가동에 따른 생산 차질과 추가 비용은 물론 대체소재로 생산한 제품의 수율이나 품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리스크는 오로지 기업의 몫입니다.”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의 수출규제에 나선 뒤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일본 수출규제의 피해를 결국 기업이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다.

민생경제를 위해서는 수출 기업이 먼저 살아야 하고 수출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예기치 못한 변수를 해결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특히 이번 한일갈등 사태가 경제적 이슈가 아닌 정치적인 이슈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정부가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해 기업들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이번주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지 100일이 훌쩍 지난 현재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우려했던 생산 차질은 다행히 빚어지지 않았다.


국내 업체들이 일찌감치 해당 소재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고 국산화 등 공급선 다변화에 나선 덕분이다. 경제보복에 비판적인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수출 승인을 찔끔찔끔 내준 영향도 있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기업들은 말한다. 일본 수출규제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수요감소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더해져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가 한일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서 기업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고 비즈니스에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대체소재 개발과 생산라인 적용을 다루는 긍정적인 뉴스가 앞다퉈 나오지만 반도체 업계의 속내는 여전히 불편하다. 반도체 라인에서는 대체소재를 실제 생산라인에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데만 보통 6개월이 걸린다. 앞으로도 2~3개월가량 더 테스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또 일본산 대체소재를 테스트 과정을 거쳐 실제 생산라인에 투입해도 품질과 수율·비용 측면에서 일본산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업체들이 일본산 소재를 주로 사용했던 것은 뛰어난 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체소재 테스트 비용과 일본산 대비 단가 문제 등 유무형의 비용 부담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에 일본 노선을 대폭 줄인 항공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매출 비중이 높은 일본 노선의 수요가 급감하며 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지난 2·4분기 8개 국적 항공사 모두 적자를 기록했고 3·4분기 실적도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희망퇴직·무급휴직·단기휴직 등을 실시하는 항공사도 상당수다. 한 항공업체 관계자는 “일본산 불매운동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일본 노선을 줄이고 어쩔 수 없이 동남아시아로 취항지를 돌렸지만 동남아 노선도 경쟁이 치열해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최근 태풍 ‘하기비스’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본 일본에 성금과 구호물자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은 과거 일본에 대규모 태풍·지진 등이 발생했을 때 민간외교 차원에서 성금을 보내고는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국내 대기업들이 상당한 액수의 성금과 구호물자를 지원해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등 우리 기업들이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뜻 나서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간 관계가 워낙 강경하다 보니 민간이 나서 양국관계를 개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기업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외에도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따른 경기둔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식으면 내년 우리 기업들의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기계업체 관계자는 “북미 지역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70~80%가량을 차지하는데 미국의 경기둔화 전망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탄핵 문제마저 불거져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내년 하반기까지 무역분쟁이 계속된다는 가정 아래 추가 관세 비용 등을 고려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내년 경영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중국의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줄어 영업 환경이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와 환율·금리 등 경영계획 수립에 핵심적인 변수들도 내년 전망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내년 국제유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워 최대한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용·박한신·서종갑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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