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뉴욕 IR과 靑이 모르는 것들

김영필 뉴욕특파원


나흘 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한국 경제 설명회(IR) 자료의 제목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나아가기(Making Headway for Sustainable Growth)’다.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방향 가운데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는 사라지고 지속가능과 혁신성장만 남아 있다. 전체 프레젠테이션(PPT) 36쪽 중 공정경제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언급은 없고 소득주도성장의 한 부분인 복지 강화가 1페이지, 그것도 마지막 장에 소개돼 있었다.

듣다 보니 궁금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7년 1월이 마지막 뉴욕 IR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행사는 청와대가 굳건히 믿는 3대 정책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 정도 아닌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며 “외국인 투자가들에 맞춰 활력과 탄력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고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뒤집어 보면 해외 IR에서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로 들렸다.

기재부가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대대적으로 소개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친노동정책에 의구심을 가진 이들에게 불안감만 키워줬을 것이다. 이날 행사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고민이 묻어난 결과였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청와대가 이 같은 상황을 알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6%에서 2.0%로 내리자 다급하게 사회간접자본(SOC)과 건설투자 카드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SOC 예산을 당초 4조4,000억원(최종 3조1,000억원)이나 줄이려고 했을 때 정부를 포함한 곳곳에서 경기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몰아붙이기식 부동산 정책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여를 허비했다.

이제라도 방향을 바꾼 게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위기를 너무 쉽게 얘기하면 경제주체들이 위축되고 이것이 경제위기를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기를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다고 했다. 언론과 전문가·야당을 겨냥한 것 같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에 100% 동의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게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부는 “기초체력은 강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언론도 전문가도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 결과는 어땠나. 대우가 공중분해됐고 주요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중산층이 무너진 게 외환위기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사석에서 “언론 등은 위기를 말하는 게 맞다”며 “정부는 이를 수습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워치도그가 잠잘 때 위기는 찾아온다.

우리 경제는 강하면서도 약하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는 위기 시 한순간에 사라진다. 2008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사 하나에 금융시장이 뿌리째 뒤흔들린 게 우리다. 이 때문에 정통 금융관료들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최대 0.75%포인트로 유지하려고 하고 미국과의 통화스와프에 목맨다. 고환율을 통해서라도 수출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관료들이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월스트리트와 IMF·세계은행(WB)은 세계 경제의 급격한 둔화를 점치고 있다. 수출이 뒷걸음질친 지 10개월째다. 위기라고 말하면 어려워진다는 수준의 인식과 재정확대만으로는 역사에 국가부채만 늘린 정권이라는 기록을 남길 뿐이다. 일본과의 관계부터 기업·노동정책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대통령이 전·현직 경제관료를 직접 만나야 한다. 대책반장들은 많다. 이르면 내년에 온다는 경기침체, 시간이 없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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