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쿠르드 "합의 위반" 서로 비방…위기의 휴전

시리아 북부 폭넓은 국경서 교전
先攻 책임소재 확인하기 어렵고
쿠르드측 철군 이행 여부도 모호
에르도안 "군사작전 재개" 경고
휴전 주도 자찬 트럼프도 '뭇매'
매코널 "美 시리아 철수는 실수"


터키가 지난 9일(현지시간) 시작한 시리아 군사작전을 5일간 조건부로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되며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터키와 쿠르드족은 서로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비방전을 벌이고 있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족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짓뭉개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터키의 휴전합의를 자국의 ‘외교적 승리’로 치켜세운 미국 정부에 대한 국내 유력 인사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쿠르드민병대(YPG)가 주축을 이룬 쿠르드·아랍 연합 전투부대인 시리아민주군(SDF)은 전날 시리아 북동부 국경도시 라스알아인 인근에서 발생한 교전과 관련해 “터키가 휴전합의 이후에도 공습과 포격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레두르 카릴 SDF 사령관은 “휴전 발표 이후에도 터키의 공격으로 최소 20명의 민간인과 14명의 병사가 숨졌다”며 “터키 국방부는 라스알아인에서 부상자와 민간인이 빠져나올 통로를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터키는 반대로 “쿠르드족이 합의를 어겼다”고 비난의 화살을 쿠르드족에 돌리고 있다. 터키 국방부는 같은 날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YPG 테러리스트가 36시간 동안 14건의 공격을 감행했다”며 “터키군은 휴전합의를 완전히 이행했다”고 강조했다. 전날 발생한 공격이 터키군에 의한 것인지 시리아 반군이 시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WSJ는 전했다.



앞서 17일 터키와 쿠르드족은 미국의 중재로 오후10시부터 120시간 동안 조건부 휴전에 들어갔다. YPG가 120시간 내에 터키가 설정한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하는 것이 합의 조건이며, YPG는 부상자와 민간인의 철수를 위해 안전통로를 보장해달라고 터키 측에 요구한 상태다. 안전지대란 폭 30㎞, 길이 440㎞의 터키 동부와 시리아를 잇는 국경 지역으로 터키는 자국 내 시리아 난민 100만 명 이상을 이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에도 실제로 쿠르드 측이 안전지대에서 철수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고 전한 반면 AP통신은 철군 조짐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SDF 병력은 “휴전합의는 쿠르드족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철수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19일 밤 카릴 사령관은 휴전합의에 따라 안전지대에서 철수하겠다고 처음으로 공식 선언했다고 AP는 전했다.

쿠르드족의 합의 이행에 대한 엇갈린 시선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이 기한 내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작전을 재개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는 19일 정의개발당 행사에서 “테러리스트들의 머리를 짓뭉개버리겠다”며 쿠르드족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또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시리아 정부군이 우리 작전구역 중 일부에 주둔하고 있다”면서 22일 러시아 방문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휴전합의를 통해 “큰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 결정과 관련해 국내 인사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재임한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8일 HBO 토크쇼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 동맹의 터전을 잃게 했다”며 “ISIS(이슬람국가(IS)의 옛 이름)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군사개입을 유보한 사실을 거론하며 “재앙이었다”고 맞받아쳤다.

앞서 같은 날 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미군 철수 결정을 맹비난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미군 병력의 시리아 철수는 심각한 전략적 실수”라며 시리아 철군으로 재확인된 트럼프 대통령의 ‘신고립주의’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