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차 방일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씨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 총리는 현장에서 “국경을 뛰어넘은 인간애”를 언급하면서 “한일 사이에는 1,500년에 걸친 우호 협력의 역사가 있다. 이를 훼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도쿄 고쿄에서 열린 즉위식을 마친 후 신주쿠 JR신오쿠보역을 찾았다. 이곳은 지난 2001년 유학생 신분이었던 이씨가 일본인 세키네 시로씨와 함께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 사고 직후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두 사람의 용기 있는 인간애를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후 이 곳은 한일 우호의 상징과 같은 장소가 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을 방문해 2001년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다 숨진 ‘고(故) 이수현 의인 추모비’를 찾아 묵념하고 있다./도쿄=연합뉴스
이총리 “고 이수현씨, 국경 넘는 인간애 실천”
이 총리는 이 곳에 마련돼 있는 추모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한 후 꽃을 바쳤다.
이 총리는 헌화 후 “인간애는 국경도 넘는다는 것을 두 분의 의인이 실천해 보이셨다”며 “그러한 헌신의 마음을 추모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일 두 나라는 길게 보면 1,500년의 우호 교류 역사가 있다. 불행한 역사는 50년이 안된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50년이 되지 않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우호 협력의 역사를 훼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인근 한인 상가를 둘러보고 있다./도쿄=연합뉴스
DJ, 한일 우호 중시하며 미래지향적 관계 강조
이는 지난 1998년 일본을 전격 방문했던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일본 국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과 함께 한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호소했다. 또 이런 역사관을 바탕으로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DJ-오부치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부치 총리는 이 선언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DJ의 권유로 언론계를 떠나 정치권에 발을 디뎠던 이 총리 역시 그간 DJ 정신 계승 차원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틈 날 때 마다 강조했다.
이 총리는 지난해 11월 방한한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과 면담 중에도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나왔던 때가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로,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놀라운 균형감각과 오부치 총리의 남다른 배려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도쿄로 출발하기에 앞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리는 “한일관계에 여러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두 나라가 지혜를 갖고 잘 관리해나가기를 바란다”면서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한 발짝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