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취준생, 정신건강의학과에 처음 가보다

“그럼 환자 분들과 똑같이 접수하고 상담한 뒤에 인터뷰할게요. 괜찮으시죠?”

지난 18일, 취업 스트레스를 상담 받기 위해 연락이 닿은 서울 종로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의사선생님이 묻는 말에 순간 “네”라는 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내 나이 24살. 취재 요청을 한 인턴기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취업준비생이기도 하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기사 발제를 할 때는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처럼 청년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마음이 아플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중에 취업할 때 혹시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누가 이걸 알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거 아닐까?’ 그러다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난 18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이신혜 인턴기자

▲생애 첫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그리고 정신건강검진

병원에 들어가 신규환자접수 동의서를 쓰고 설문조사지 같은 것을 받았다. 대략 100개 정도의 질문이 있었고 우울증, 강박, 인간관계, 식욕과 수면 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다. 1부터 5까지의 점수표에 점수를 적으면 됐다. 설문조사를 마치고 바로 방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증상이 있으셔서 오신 건가요 아니면 정신건강검진이 받고 싶으셔서 오신 건가요?” “최근 업무 스트레스는 심하신가요?” “상사나 동료, 친구들 사이에서 인간관계 문제로 힘든 부분은 없으신가요?” “평상시에 우울해서 집중이 안 됐던 적이 있었나요?”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내리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한 달 동안 제일 기분이 좋았던 순간과 가장 안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인상 좋은 선생님께서 내 말에 경청하면서 나긋나긋하게 물어주셨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대답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냥 솔직하게 다 털어놓게 됐다.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두려워했을까?’ 정말 그냥 건강검진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약 30분간 상담이 이어졌고 진료가 끝났는데 그동안의 고민과 속에 쌓인 감정을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해졌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나고 의사선생님은 “특별히 추가진료나 치료는 필요없는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만약 치료가 필요한 상태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보통은 약물치료 혹은 정신치료에 관한 설명을 드린다”는 답변이 왔다.

▲“다른 사람이 나의 정신과 진료 기록 못 보는 거 확실한가요?”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의 염태성 원장은 타인이 정신과 진료 기록을 볼 수 없는 것이 확실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확히 100%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임용이나 실비보험 가입시 진료기록을 보기 전 본인 동의를 받게 되는데 그 조항이나 약관에 동의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진료코드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코드는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코드로 표현한 것인데 보험을 적용해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시 기록이 남기는 남는다. 만약 비보험 처리를 했다면 그 기록조차 보험공단에 남지 않기 때문에 본인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병원비 차이가 많게는 약 7배까지 난다. 정신의학신문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보험을 적용할 때 정신건강의학과 초진 비용은 3만원 내외이나 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20만원 정도로 올라간다.


본인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료 기록을 보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본인 동의에 표시하지 않으면 사실상 회사나 다른 기관에서 개인 진료기록은 볼 수 없다. 때문에 진료기록을 타인이 보는 것이 걱정된다면 비보험처리를 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서류를 보는 데 있어 진료기록 조회와 관련된 본인 동의란에 적힌 문구를 꼼꼼히 읽고 표시를 안 하면 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인권문제를 중요시해 취업이나 재취업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정신질환에 대해 묻거나 기록을 조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염 원장 또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정신 질환을 육체 질환과 달리 특이한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현대사회에서 저마다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일 뿐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지만 진료를 받지 않아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학생상담센터 홈페이지

▲“3주 뒤에 상담 가능합니다” 지금 대학심리센터는 대기 중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는 평균 3만~5만원, 사설심리상담업체 상담비로는 평균 6만~1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대학생의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다. 때문에 대학 심리상담센터는 재학생들에게 무료로 심리상담을 제공해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 A씨는 “공채시즌이라 불안함·우울함이 너무 커서 상담을 받고 싶은데 학생 심리상담센터 대기가 너무 길어서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몇몇 대학교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기까지 평균 얼마 정도가 걸리는지 물었다. 서대문구의 한 대학 심리상담센터 관계자는 “지금 대기자들이 많기 때문에 3주 정도 뒤에 상담예약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의 한 대학 심리상담센터 관계자는 “다음 주에 접수하면 다다음주쯤 상담사가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에 위치한 한 대학 심리상담센터 관계자는 “대기자들이 있어 아마 다음 주 정도에 상담사 선생님과 시간을 맞추면 될 텐데 많이 괴로운 상태라면 우선 배치해줄 수 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학 심리상담센터 대신 사설 심리상담업체가 제공하는 무료 상담을 이용해봤다. 상담사는 “요즘 40·50대보다 20·30대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하기 어려우나 주로 “취업이나 직장 문제, 인간관계와 외로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확실히 장년층은 ‘힘든 감정은 버티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 청년층은 ‘자신의 삶을 잘 살고자 하는 욕망, 워라밸, 자아를 찾기 위한 고민’이 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준생·대학생·주부·무직자 등 2030도 ‘건강검진+우울증 검사’ 받을 수 있다


/자료=김광수 의원실

최근 5년간 공황장애·불안장애·우울증·조울증 등 심리 불안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증가율 1위가 모두 2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심평원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조울증 환자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해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조울증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총 170만 5,619명으로 2014년 129만 4,225명 대비 31.8% 증가했다. 특히 최근 5년간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가운데 각 질환별 증가율 1위는 모두 20대였다. 실제 지난해 전체 진료환자 중 20대는 20만 5,847명으로, 2014년 10만 7,982명에서 5년 새 90.6%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가검진법’에 따르면 만 20세와 만 30세는 건강검진과 함께 우울증 검사도 받을 수 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기 힘들었던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주부도 비싼 돈 들이지 않고 건강검진과 우울증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홍보가 잘 안 돼 건강검진 수검률은 25%, 우울증 검사 수검률은 17.5%에 불과했다. 10년에 단 한 번, 정해진 나이에만 우울증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김 의원은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적 불안 증상이 심해질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사전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며 “올해부터 20~30대도 우울증 국가건강검진 대상에 포함됐지만 10년에 1번밖에 받을 수 없어 실효성이 없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신혜인턴기자 happysh040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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