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지구 현지지도에 나선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호텔해금강’ 앞에서 실무자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사진을 23일 공개했다. 이곳은 현대아산이 지은 호텔이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 남측시설 철거를 지시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향후 남북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남북 평화경제’를 강조한 것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2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 지도하고 해금강호텔·금강산호텔 등 남측에서 건설한 시설들을 돌아보며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는 표현 등으로 비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며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정책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금강산 관광 남측시설 철거 지시와 선대 비판은 남측이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한 직접적인 불만 표현인 동시에 근본적인 남북관계 전환을 시도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남북경협이 재개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주도해 금강산 등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남한에 의존한 경제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중요한 원칙을 밝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강수’와 무관하게 평화공세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의 한·스페인 정상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처럼 평화의 길이 돼 세계인이 함께 걷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구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직접 선대의 잘못까지 언급한 부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지시는 금강산 관광에 한국 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 데 분노를 표출하면서 자력갱생하겠다는 점을 한국과 미국에 분명히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직접 선대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여야의 입장은 엇갈렸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남북교류와 평화의 대표적 상징인 금강산 관광인 만큼 북측의 조치는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목을 맨다”며 “문 대통령은 말로만 평화를 외치지 말고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안보와 동맹을 챙기라”고 말했다.
/박우인·양지윤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