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적으로 매물을 쏟아내며 숨 가쁘게 진행됐던 LG(003550)그룹의 인수합병(M&A) ‘대전’이 마침표를 찍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흥행에 실패해 매각가격이 예상을 밑돌거나 일부 매물은 협상 장기화 조짐도 보인다. LG 측이 체질 개선 목적으로 M&A를 한꺼번에 진행하느라 내부 역량이 분산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가 올해 시장에 내놓은 M&A 매물 중 4건이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LG화학(051910)의 편광판 및 유리기판 사업부와 LG CNS 소수지분(35%), LG전자(066570) 베이징빌딩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나마 새 주인을 찾은 매물도 ‘흥행’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LG유플러스(032640) 전자결제(PG) 사업부는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유력하게 거론됐던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빠지면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렇다 보니 당초 4,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됐던 가격은 현재 3,000억원선으로 거론되고 있다. 테크로스(부방그룹 관계사)가 인수한 LG전자의 수처리 자회사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도 시장의 기대보다 낮은 2,500억원 안팎에서 매각가격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LG에 비(非)핵심 사업이면 남들에게도 그렇게 매력적인 물건은 아니라서 가격을 두고 이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매물들도 연내 딜이 마무리될지는 불투명하다. LG화학의 액정표시장치(LCD)용 유리기판 사업부는 미국 코닝과 석 달 이상 협상을 하고 있지만 가격 차이는 여전하다는 게 IB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 업체들의 물량공세로 LCD 사업의 업황이 좋지 않은 탓이다. LG CNS의 소수지분 인수전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8월 예비입찰 때만 해도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6곳이 참여하면서 열기가 달아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LG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맥쿼리PE를 쇼트리스트(인수적격후보)로 선정한 뒤 프로그레시브딜(경매 호가식 입찰)로 전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달 초 진행될 것으로 봤던 본입찰도 25일로 연기됐다.
주요 매각이 저조한 성적을 내면서 LG의 체질 개선 전략에도 일정 부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IB 업계에서는 LG가 시장에 내놓은 물건의 매각을 빠르게 마무리한 뒤 비핵심 계열사 1~2곳을 더 팔아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LG화학에 합병된 LG생명과학이나 LG생활건강의 음료 부문 등이 IB 업계가 눈독을 들이던 매물 후보들이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ZKW(오스트리아 자동차 헤드램프 제조사) 인수와 같은 ‘빅딜’에 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LG 내부에서도 M&A 전략에 비판론이 일어 매각 속도전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는 딜이 모두 마무리된 뒤 추가 M&A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